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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야구와 고사리손

by 앰코인스토리 - 2015. 6. 16.


밥만 먹고 나면 야구공 하나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묵직한 야구공은 살 돈은 없어, 학교 근처 체육사에서 야구공 모양을 한 테니스공을 샀었지요. 선수들이 던지는 커브 슬라이브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써먹는다며 엄지손가락과 검지 가운뎃손가락을 그럴싸하게 만들고 나서, 멋진 폼으로 포수를 향해서 던졌습니다. 하지만 커브나 슬라이브는 궤적부터 다른 공인데 항상 똑같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 야구공을 가지고 실밥을 잡고 손목을 사용하는 공들이었지만 고사리손으로 흉내만 내다보니 그 공이 그 공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시작한 경기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매 순간 임했던 생각이 납니다. 흙 바닥을 여러 시간 뛰어다니다 보니 옷은 흙먼지로 가득했고, 살은 새까맣게 타서 옷으로 가려진 부분과 햇빛에 노출된 부분이 확연히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래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해서 이기면 정말 기분이 좋아 방방 뛰면서 집까지 가게 되었고, 지는 날에는 집에 가는 내내 그 진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온통 게임을 진 생각뿐이었지요.


프로야구가 하는 날은 TV를 혼자 독차지하고 누구도 다른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리모컨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오는 선수 한 명의 이름을 적고 수비 위치며 타율까지 받아 적었습니다. 야구하는 세 시간 동안은 오로지 TV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설가가 공 던지는 방법이라며 직접 시범을 보일 때면 그 노란 테니스공을 얼른 가져와 똑같이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내일 다 죽었어! 내가 드디어 신무기를 장착하는 순간이구나!’ 까먹지 않으려고 그림 솜씨도 없으면서 노트 옆에 공 모양과 손을 서툴게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벼르고 별렀던 타자가 등장하자, 콧대를 납작하게 할 신무기에 온갖 힘을 최대한 주고 멋지게 던져봅니다.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고 삼진으로 물러날 때 그 희열과 쾌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 내가 해냈구나! 해냈어!’라는 그 성취감은 끝내줬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고 야구할 시간도 없어졌지만, 가끔 시청하는 야구를 볼 때마다 꼬마 시절 열정 하나로 운동장을 누비면서 야구에 미쳐 살던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