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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여행기] 중국 황산의 숨은 비경, 서해 대협곡을 다녀오다

by 앰코인스토리 - 2015. 5. 14.

형제들끼리 부부동반으로 '쿤밍(곤명)'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행준비를 하던 중, 동생의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취소시키고 부랴부랴 예약한 곳이 '황산'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기들과 동행한 '장자제(장가계)'가 그리도 좋아서 일찌감치 점 찍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장가계는 올려다보아서 좋고, 황산은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가슴 깊이 묻어둔 0순위 여행지다.


지난주에 다녀온 3박 4일 여행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공항을 10여 분 거리에 두고 여행가 직원은 "비행기 연결문제로 1시간 반 정도 지연된다."고 전한다. 예정대로 출국 수속을 받고 나니 다시 30분이 지연되어, 결과적으로 4시간 넘게 면세점을 돌고 돌았다. 귀국하여 구문을 훑어보니, 아시아나 직원의 구차한 변명은 "히로시마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사고의 여파"가 우리 비행기까지 파급된 것이다.



여행객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실리도 얻지 못한 채 출국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청대 옛날 거리다. 책상 크기만 한 벼루 말고는 인구 25만 명의 소도시라서 그런지 인사동 골목에 비하면 조촐하다. 이곳은 1년에 70일 정도가 맑다는데, 어제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확연히 다른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하늘이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케이블카 승차장에는 이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우리보다 네 배나 높은 목소리를 낸다는 한족들 사이에 묻혀서 1시간 40분간의 고생 끝에 8인승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1,600m까지 10여 분을 오르면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감탄사뿐이다. 1979년 덩샤오핑(등소평)이 반바지 차림으로 등정한 후 1985년부터 내외국인에게 개방되고, 199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대형사진이 홍보하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걸으면서 눈요기를 하고는, 신이 빚은듯한 거암 괴석에다 기송까지 품은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오악을 돌아보면 다른 산들이 눈에 안 차고, 황산을 돌아보면 오악이 눈에 안 찬다."는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상에서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황산의 숨은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서해 대협곡 탐방시간이 다가왔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두 시간, 일행은 여성 11명에 남성이 5명이다. 여성 6명은 출발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동행한 여성 3명과 남성 2명도 중도 포기했다. 1,600m 출발선에서 1,450m를 오르내리는 1환까지 나를 포함한 3명이 다녀왔고, 1,380m 지점인 2환의 모노레일 반환점까지는 40대 부부만이 완주했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잔도에서 바라보면, 멀리서는 웅장한 바위산이 다가오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만물상이 펼쳐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기가 막히는 여러 폭의 산수화다. 너무도 청명한 날씨 탓에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운해를 볼 수는 없지만, 신비한 속내는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깎아지른 절벽에는 난간조차 없는 곳이 많아 약간만 비틀거리면 천 길 낭떠러지라, 현기증이 염려되어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고 심호흡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설치해 놓은 view point를 한 곳도 빠짐없이 모두 들렀다. 이런 절경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수직 절벽에 도대체 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중국의 기술력이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도 2%의 아쉬움이라면, 1환의 반환점을 2환의 반환점으로 착각하고 돌아선 것과, 편하게 내려오면서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동조한 여행객들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코스의 다양한 풍경을 더 감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탈 수 있다는 50인승의 태평 케이블카는 1시간 45분을 기다려야 했고, 하강하면서 본 풍경은 오를 때 운곡 케이블카에서 본 것과 대동소이했다.



나머지 이틀간은 예상대로 흐리고 비가 내렸다. 황산 근교에 있는 5A급(우리로는 5성급)국가 지정문화재 4곳과 박물관을 답사했다. 500억 원(?) 가치의 아름다운 분재와 당대 500인의 나무조각상을 보유한 '포가화원'을 제외하고는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섭섭할 것 같지 않은 문화재들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한국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지난해만 17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외국 비행기로는 KAL과 OZ만 운행된다는 이곳이야말로 후회 없는 관광지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숙제를 해결하고 나니, 더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