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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두물머리에서

by 앰코인스토리 - 2015. 3. 2.

▲ 두물머리

사진 출처 : http://goo.gl/u3wRnW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 잔잔한 강물에 떠다니는 돛단배 한 척, 외롭게 솟은 소나무섬 하나. 강물을 건드리고 갈대밭으로 도망가는 바람 한 자락. 절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두물머리, 이름 그대로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 남한강의 물과 북한강의 물이 만나 하나의 한강을 이루는 곳.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했고, 남한강은 강원도 금태봉 기슭 검룡소에서 시작해서 여기에서 만난다고 하니, 참 멀리서도 흘러왔다. 거기에 머리처럼 삐죽하게 튀어나온 땅이라고 해서 두 물에다 머리를 붙였다고 한다.


새벽 전철을 타고 양평까지 온 것은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를 보고 싶어서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엄마 품에서 잠든 아기의 숨결처럼 평화롭고 세상 어떤 수묵화보다 매혹적이다.


저 멀리로 보이는 황포돛배 한 척.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황포돛배들로 나루터가 번창했다고 전해진다.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과 충청북도 단양에서 한양까지 배를 타고 오갔다고 한다.


옛날 뱃사공들이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겠지. 그러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 두물머리 나루터가 아니었을까. 주모가 내어주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기운을 얻고 다시 노를 저어갔겠지. 돛단배에 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하는 처녀일 수도, 어머니의 약값을 벌려고 한양으로 가는 청년일 수도, 낯선 타향에서 십수 년을 보내고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가는 탕아일 수도 있겠지.


이 모든 세월의 흔적을 저기 서 있는 저 커다란 느티나무는 다 보았겠지. 느티나무의 나이도 400살. 얼핏 보기에는 한 그루의 평범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세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엮여있다. 어쩌면 저 나무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듯 세 나무가 만난 게 아닐까.


조금 더 걸어가니 두물경이라고 쓰여 있는 바윗돌이 나타난다. 왼쪽은 남한강, 오른쪽은 북한강, 두 강이 만나는 오른쪽 앞이 한강이라고 하는데, 멀리서도 소용돌이치는 지점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앞에 외롭게 떠 있는 작은 섬이 솔섬. 어부가 나룻배에 앉아 그물을 강물로 던지고 있다. 서울서 온 나처럼 이른 새벽부터 나온 부지런한 사람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은퇴한 후에 전라도 한적한 고향으로 가 낚시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군 동기가 생각난다. 가끔 주고받는 소식에 의하면, 먹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고 남은 시간에는 산을 오르고 텃밭을 일구며 지낸다고 한다. 그 친구가 부럽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다음 생에서는 강이 되어 다시 만나세.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