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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리와 친해지기

[와인과 친해지기] 샤토 무통 로칠드 (Chateau Mouton Rothschild)

by 앰코인스토리 - 2015. 1. 30.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


2015년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양띠 해에 어울리는 와인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필자는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라고 대답할 것이다. 화폐전쟁의 주범인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한 와이너리라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와인에 예술을 접목시킨 무통 로칠드만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와인도 드물어 이번에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1855년,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세계 만국 박람회가 열리게 되었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던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보르도 와인에 등급을 매겨 박람회에 출품하게 했고, 61개 특급 샤토가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나뉘게 되었다. 당시 무통은 1등급이 아닌 2등급이었다. 이때 1등급은 라뚜르, 오브리옹, 마고, 라피트 등으로 이들 4개였다. 1855년에 그렇게 등급체계가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등급 조정이 있었다. 1973년, 무통이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된 것이 유일한 일이었다. 2등의 서러움을 이겨내고 1등으로 도약하는 데 무려 120년가량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필립 로칠드 남작(1902-1988)의 노력과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필립 로칠드 남작(1902-1988)의 모습

사진 출처 : www.chateau-mouton-rothschild.com


필립 남작이 스무 살 젊은 나이에 무통 로칠드를 경영하면서 여러 혁신을 이루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와인을 생산한 샤토에서 병입까지 마치는 일(mis en bouteille au chateau)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라벨을 고안한 일이었다. 중간 상인의 세력이 컸던 당시에는 생산자가 와인을 양조한 다음 오크통 채로 중간 상인에게 넘겼고 병입은 상인들이 했다고 전해진다. 헌데 중간에 어떤 상태로 와인이 보관되고 병입되었는지 모르기에 와인 품질 또한 보증할 수 없었고, 와인 라벨도 중간상인들이 붙여 팔았기에 생산자보다는 중간상인의 이름이 더 커지고 규격이 통일되지도 않아 볼품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필립 남작은 여러 샤토와 동맹을 맺고, 와인을 생산한 샤토에서 병입까지 마친다고 선언했으며(일종의 품질책임경영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만의 라벨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라벨은 로칠드 가문의 문장인 양과, 다섯 형제를 뜻하는 다섯 개 화살로 표현되어 있고, 샤토에서 병입까지 마쳤다는 글귀도 있어 당시에는 혁신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무통 로칠드의 ‘무통’은 프랑스어로 ‘양’을 뜻한다.


▲ JEAN CARLU, 처음 고안된 라벨이나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라벨을 붙여 팔지는 않았다

사진 출처 : www.chateau-mouton-rothschild.com


처음에는 보르도 상인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서 뜻을 접고 말았지만, 보르도 그레이트 빈티지인 1945년부터 매년 다른 화가가 라벨 작업에 참여해 그들의 그림으로 라벨을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와인과 예술을 접목하게 된 것이다. 필립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드디어 1973년에 무통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하게 되었는데, 그 해의 라벨은 최고의 화가 피카소의 작품이 실리게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카소 외에 샤갈, 달리, 앤디 워홀, 존 휴스톤 등을 포함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와인,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 로칠드 가문의 문장인 양을 주제로 자신의 영감에 따라서 라벨을 그렸고, 그 대가로 무통 로칠드 와인 10케이스를 받았다고 하니 그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 (좌) PHILIPPE JULLIAN, 무통 로칠드 최초의 와인라벨, 1945 빈티지 (우)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1973 빈티지

사진 출처 : www.chateau-mouton-rothschild.com


▲ (좌) MARC CHAGALL, 샤갈, 1970 빈티지 (우) JOHN HUSTON, 존 휴스톤, 1982 빈티지

사진 출처 : www.chateau-mouton-rothschild.com


와인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5번 무통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통은 부산에서 올라오신 ㅅㅇㄴㅇ 님이 가져오신 2007년 빈티지였다. 온라인상에서만 알고 지내던 분이 오랜만에 서울에 온다고 해서 카페 회원 10여 명이 처음으로 오프라인상에서 모이게 되었다. ㅅㅇㄴㅇ님이 무통을 들고 오신 이유는 조금은 황당했다. 당직근무를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야 해서 아들에게 셀러에서 와인을 꺼내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빨간 호일로 싸인 레드와인 1병을 가져오라고 했고, 기차시간이 촉박해 가져온 와인을 덥석 받아 서울로 오는 기차에 겨우 올라타고 확인해보니 그분이 아끼던 무통 와인이었다고. 이를 어쩔까 잠시 고민은 했었지만 이왕 그렇게 된 거 기쁘게 나눠 먹기로 통 큰 결정을 하셨다고 했다. 그날 모임에 깜짝 와인으로 등장한 무통 로칠드 2007. 예기치 않았던 명품 와인의 등장에 모두 환호하였고, 처음 만나 서먹한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실, 제일 맛있는 와인은 공짜와인 아닌가! 무통을 공짜로 먹었으니 그 맛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 XU LEI, 중국 작가 쉬 레이, 2008년 빈티지

사진 출처 : www.chateau-mouton-rothschild.com


2015년은 청양의 해. 2008년 무통 로칠드 라벨이 놀랍게도 청양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 커가는 중국 와인시장을 겨냥해서 중국 작가에게 라벨을 의뢰한 것이 좀 상업적인 면이 있어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무통의 라벨작업에 참여하는 유명한 작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