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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晩婚 (만혼)

by 앰코인스토리 - 2014. 12. 26.


복 많게도, 이 나이에 대구에서 화공약품상을 하고 있는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축하한다. 방금 청첩장을 받았어. 그런데 몇 살이야?”

“서른아홉이야.”

“대단하다. 그 심정 나도 알아. 서른여덟인데, 툭하면 신경질 부리지, 나무라면 집 나간다고 야단이니 어쩌면 좋으냐. 너는 이제 한시름 놓았구나.”


65학번인 우리 또래는 26~28살에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37~42살이 자녀의 평균나이다. 대다수가 결혼을 했지만, 만혼의 처녀총각이 생각보다 많은 것도 현실이다. 고종사촌누님의 자녀가 그렇고, 아들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았던 변리사가 42살이다. 그래도 나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결혼은 기본이며, 서른 전에는 성혼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는 늙은이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던 24살부터 결혼해주기를 바랐으니 그 세월이 자그마치 15년이다. 그 사이의 우여곡절을 무슨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서른까지는 딸이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서른다섯이 넘어가니 ‘남들은 자식을 잘들 혼사 시키는데 노처녀로 늙히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부인께서도 걱정을 한다는, 착한 아들의 전언이 무능함에 부채질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가 자책감으로 변하더니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잠 못 자는 날을 보태주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동기회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나이를 말할 때면 만으로 환산해서 한 살을 낮추도록 가족 모두에게 강요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딸이 외출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만, 집에 있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러면서도 막상 내가 도와줄 일이 없다는 것이 더욱더 가슴 아팠다. 딸에게는 돌아올 말이 겁나서 속으로만 끙끙대고, 애꿎은 아내한테만 신경질을 부리는 내 모습이 정말 못났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이젠 결혼은 물 건너갔다고 다짐하면서도, 간혹 딸 방에 꽃다발이나 케이크, 자그마한 선물상자가 보이면 ‘누군가와 교제 중이구나!’ 하면서 자위했다.


3년 전, 봄의 어느 날이었다. 9시가 되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딸이 지하 주차장에서 전화했는데 남자친구와 인사하러 온다고 하네.”라고 아내가 전한다. 전혀 누구와 사귄다는 귀띔이 없었기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양주병을 들고 와 인사를 한 청년은 보통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신장에 생긴 것도 그저 그랬지만 몸매는 다부져 보였다. 대학친구로부터 소개받아 1년여 교제 중이며, 예비사돈은 교육자 출신으로 나와 대학 동문이고, 딸과는 동갑에다 명문대 출신에 공무원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머지않아 딸이 인사를 가고 상견례로 이어지면 올해 중에는 결혼도 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딸이 인사를 가고 두 번 더 그쪽을 만났다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딸이 3년여가 지나서 결혼한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기쁨과 불안 속에 달포를 보내고 결혼식을 올렸다. 만혼의 딸을 결혼시킨 전과 후는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 수치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식후 200~210을 오르내리던 혈당은 매달 한 번씩 3개월에 걸친 체크에서 130대를 보였고 2년 전부터 140~150이던 혈압은 120/70을 유지했다. 담당의사도 인정했다.


“요사이 상태가 좋으십니다.”

“3개월 전에 39살의 딸이 결혼했습니다.”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요.”

“원장님도 나이 드시면 이해될 것입니다.”


주위의 부러움과 성화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아내는 마담뚜 흉내까지 내게 되었는데, 두 달도 되기 전에 여선생 한 쌍을 상견례까지 시켰다. 며칠 전에는 학창시절에 절친했던 친구와 3년 만에 통화했다. 그가 뜬금없이 서울에 홀로 나타나 홍천에서 온 아가씨와 결혼한 후부터는 친구들과 연락도 두절하고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죽지 않았구나. 어떻게 지내니?” 

“44살인 딸이 2년 전에 경찰관하고 결혼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인공 수정한다고 해서 걱정이야.”


아! 어느 일에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느낌표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