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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뇌과학자가 들려주는 이기는 법칙

by 앰코인스토리 - 2014. 12. 23.

1995년 8월 19일,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 마련된 특설 링에서 마이크 타이슨의 복귀전이 펼쳐졌다. 감옥에서 3년을 보낸 후 처음 갖는 경기였다. 상대는 무명의 피터 맥닐리였고 경기는 89초 만에 싱겁게 끝났다. 4개월이 지난 후 가진 두 번째 시합도 마찬가지였다. 가슴과 배가 출렁거릴 정도로 살찐 버스터 마티스 주니어는 가까스로 3회까지 버티다가 KO 당했다. 경기 내내 타이슨은 거구 마티스를 밀쳐내기만 했다. 수완 좋은 프로모터 돈 킹조차 경기가 이렇게나 허접스러울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 <사진 1> 돈 킹과 타이슨

사진 출처 : www.dailymail.co.uk


3개월 후인 1996년 3월 16일 드디어 타이슨은 싸울만한 상대를 만났다.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 또다시 마련된 특설 링에서 WBC 헤비급 챔피언인 영국의 프랭크 브루노에게 도전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도 타이슨은 진가를 발휘하며 브루노를 3회 KO로 때려눕혔다. 이렇게 해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타이슨은 다시 한 번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작은 승리는 큰 승리를 불러온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돈 킹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일부러 약한 상대와 복귀전을 주선했다. 타이슨이 세계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돈 킹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사진 2> Ian Robertson

사진 출처 : 1000kitap.com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신경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승자의 뇌(알에이치코리아, 2013)」에서 이 메커니즘을 밝혔다. 그는 한 동물행동학 연구를 소개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연구자들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그린선피시(green sunfish) 한 무리를 사흘 동안 관찰하면서, 어느 녀석이 지배적이고 어느 물고기가 순종적인지를 파악했다.


그중 지배적인 물고기들만을 뽑아 세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혼자 따로 있게 했고, 또 한 집단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있게 했으며, 나머지 한 집단은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지내도록 했다. 이런 환경에서 닷새 동안 그대로 두었다. 닷새가 지난 후 이 물고기들을 원래 있던 어항으로 옮긴 다음 이들의 공격성을 관찰했다.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덩치가 큰 녀석과 닷새 동안 생활했던 물고기는 스트레스 속에서 패자로 살아야 했던 경험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낮은 공격성을 보였다. 반면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과 생활했던 물고기는 예전보다 훨씬 강한 공격성과 지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승자 효과(winner effect)’다.


▲ <사진 3> 책 '승자의 뇌'


능수능란한 돈 킹은 이런 효과를 알고 있었다. 타이슨에게 승자 효과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 맥닐리나 마티스 같은 ‘덩치 작은 물고기’와 시합하도록 주선했던 것이다. 이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을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드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출된다. 심지어 이기는 팀을 응원했을 때도 그렇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이겼다. 브라질 팬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평균 28% 올라갔고, 이탈리아 팬들의 수치는 평균 27% 떨어졌다. 따라서 작더라도 승리를 경험하게 되면 덜 불안해지고 더 공격적으로 바뀌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한계점도 높아진다. 게다가 승리의 환경을 친숙하게 조성해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가 낮아져 침착해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돈 킹이 챔피언전을 MGM 그랜드 호텔에다 유치한 이유다.


이처럼 작은 승리나 성공의 경험은 큰 성공을 불러온다. 같은 이유로 천재나 위대한 성공을 한 사람의 자식들이 쉽게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분명 부모의 우월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을 텐데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부모의 자식들이 더 불행해진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천재나 위대한 성취를 한 사람의 자식은 작은 승리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처음부터 부모가 이룬 어마어마한 업적과 비교해서 사소하게 보이지 않을 그럴듯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모가 이룬 성취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다는 유전자적 숙명론을 갖게 되면서 도전해보지도 않고 ‘나는 원래 안돼.’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처럼 성공이나 성취는 첫걸음이 중요하다.

이 밖에도 이기는 경험이나 승리감이 가져다주는 효능은 또 있다. 승리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게 하고 이는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높여준다. 도파민은 마음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주고 그것을 얻으려 행동에 나서게 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긍정적인 사고 모드로 사람들을 바꾸어 놓는다.



성공의 이면


저자는 성공하는 방법이나 승리의 이점뿐만 아니라 성공의 어두운 면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는 두 가지 커다란 위험이 생길 수 있다.


▲ <사진 4> 책 '승자의 뇌'


첫째, 공감 능력이 약해져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승리나 성공이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 도파민 수치를 높이면 좌뇌 전두엽을 촉진해 더 과감해지고, 긍정적이 된다. 하지만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출되면 우뇌 전두엽 활동을 둔화시켜 자각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2008년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자동차 3사 CEO는 워싱턴의 의회로 구제금융을 얻으러 갔다. TV에서 이 장면을 보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국민의 혈세를 얻으러 오는 세 CEO 모두 회사가 소유한 사치스런 제트기를 타고 온 것이었다. 전 국민은 분노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같은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공감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면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재기에 성공한 타이슨이 곧바로 몰락하게 된 것도 이런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WBC 세계챔피언이 된 타이슨은 1996년 9월 7일 브루스 셀던을 1회에 KO시키고 WBA 타이틀도 획득했다. 그런데 두 달 후 벌어진 WBA 1차 방어전에서 문제가 생겼다. 도전자인 노장 에반더 홀리필드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타이슨에게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홀리필드는 거구를 이용해 타이슨에게 밀착했다. 타이슨이 주먹을 제대로 뻗을 간격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전략으로 타이슨을 짜증 나게 만들어 결국 11회 기운이 빠진 타이슨을 KO로 이겼다. 이듬해 타이슨은 홀리필드에게 도전했다. 이번에도 홀리필드는 타이슨에게 달라붙었다. 또 홀리필드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이성을 잃은 타이슨이 3회에 세계 권투사에 남는 장면을 만들었다.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어 실격패를 당한 것이다. 오랫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해왔고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던 타이슨은 시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이성을 잃게 된 것이다.


요컨대, 승리와 성공은 우리를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 이 사실을 모르면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잘나가고 있는 사람은 이따금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조언한다. “나는 지금 성공에 도취해 있는 게 아닐까?”


승자의 뇌(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


저 : 이안 로버트슨 

역 : 이경식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승자의 뇌

저자
이안 로버트슨 지음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 2013-08-02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최첨단 뇌신경과학으로 살펴본 이기는 법칙 “무엇이 승자와 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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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병주는 _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다. 여러 기업체에서 강의도 하지만 글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느낀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항상 노력한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