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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리와 친해지기

[와인과 친해지기]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 와인 이야기

by 앰코인스토리 - 2014. 12. 12.

지난 2011년 여름, 한 달 동안 안식 휴직이 주어졌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어서 큰 맘 먹고 외국여행을 가기로 했고, 초등학교 4ㆍ5학년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럽보다는 미국 서부 국립공원을 돌며 대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여행 코스를 짜다가 나파 밸리(Napa Valley)의 와이너리(Winery)를 여행 경로에 넣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난 연도의 와인을 한 병씩 사서 잘 보관했다가 아이들 결혼식 때 미래의 사위, 며느리와 함께 그 와인을 나누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 딱 떠오르는 와인이 바로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였다.

 

미국 컬트 와인 모임에서 만난 적 있었던 할란 이스테이트. 라벨도 병도 우아하고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가장 많이 100점 만점을 받아서 유명해진 와인이었다. 그리하여 내 작은 소망을 담은 메일을 할란 이스테이트에 보냈고, 담당자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그들이 말하길, 정말 미안하지만 개인 고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 자체가 없을뿐더러 와이너리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기에 안타깝게도 내 부탁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내 사연에 감동을 하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새로 나온 와인을 매년 살 수 있도록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보내왔다.

 

사실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승낙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매년 한 병씩 할란 와인을 구매하고 있다. 우편물도 한 해에 두 번 정도 집으로 배달된다. 1월 중순에는 작은 엽서에 시를 적어서 보내주고, 가을에는 그 해 나파 밸리 포도원의 기후와 포도 작황 소식 등과 함께 와인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을 보내 구매 의사를 묻는다. 신청하게 되면 2년 후 봄에 그 와인을 받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매 방식이다.

 

나는 작은 꿈을 꾼다. 내가 2011년에 주문해 작년에 처음 받았던 와인이 할란 25주년 와인이니, 그 와인을 잘 보관했다가 9년 후 내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그 와인과 만날 것이라는 꿈을. 그때는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어 함께 이 와인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그 후로 매년 결혼기념일 때마다 우리 가족은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을 연도별로 만나는 작은 이벤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미래의 사위, 며느리가 함께하는 것은 물론이고.

 

할란 이스테이트

 

Harlan Estate ⓒ www.harlanestate.com

 

할란 이스테이트의 창업자 윌리엄 할란(William Harlan)은 미국 UC버클리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부동산 개발로 큰돈을 모았다. 할란 회장은 미국 와인의 선구자인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프랑스의 1등급 와이너리들을 둘러보고 그와 비슷한 조건의 포도밭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나파 밸리의 오크빌(Oakville)에서 와이너리 조성에 나섰다.

 

William Harlan ⓒ www.harlanestate.com

 

 

가장 자연스럽게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할란 이스테이트는 생산 방식도 고집스러웠다. 1985년에 설립되었지만 12년의 세월을 기다려 출시한 1996년 첫 빈티지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와인 업계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로버트 파커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깊은 맛의 레드와인 중 하나라고 평하며 다섯 차례나 할란 이스테이트 와인에 100점 만점을 부여했고, 영국의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도 20세기 가장 훌륭한 10개 와인 중에 꼽히는 와인이라며 극찬했다.

 

Fermentation tanks ⓒ www.harlanestate.com

 

할란 이스테이트는 구매 고객 대부분이 남성일 정도로 남성들이 좋아하는 와인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할란 이스테이트를 경험할 수 있는데, 생산량도 아주 적을 뿐 아니라 소매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애호가들은 할란 이스테이트를 접하기가 어렵다. 닷컴 버블이 한참이었을 2000년 초에는 500달러짜리 와인이 나오자마자 3,0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그래서 와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수천 명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기존 회원이 파산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들은 독특한 레이블로도 유명하다. 수소문 끝에 19세기 방식으로 미국지폐를 만드는 인쇄 기술자 중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내 지폐 색상의 음각 회화 그림을 만들어 그들만의 레이블로 사용하고 있다.

 

컬트 와인 (Cult Wine)

 

‘컬트(Cult)’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는, 첫 번째 ‘(생활방식, 태도, 사상 등에 대한) 숭배’, 두 번째 ‘(기성 종교가 아닌 종교의) 광신적 종교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컬트 와인(Cult Wine)’이란 생산량은 소량이지만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말하며, 지난 10년 사이 나파 밸리의 몇몇 와이너리에서 생산을 시작한 최상급 와인을 뜻한다. 소규모 농원에서 한정된 양만 생산한다고 해서 ‘부티크 와인(Boutique Wine)’이라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방처럼 포도 품종 중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이용하기 때문에, 카베르네 소비뇽의 준말인 ‘컬트 캡(Cult Cab)’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 콜긴(Colgin), 셰이퍼(Shafer) 등이 최고급 와인을 잇달아 내놓자, 와인 비평가들은 호들갑스러운 찬사로 이들을 맞이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미국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그중 몇몇에 100점 만점을 주면서 순식간에 추종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이들만의 독특한 판매 시스템으로, 구매자 명단인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야만 구매할 수 있다. 회원들의 사망이나 파산 등으로 결원이 생기길 기대하는 대기 중인 이들만 와이너리별로 수천 명, 개중에는 아예 리스트를 폐쇄해 버린 곳도 존재한다.

 

참고서적 : 「와인&커피 용어해설」, 허용덕ㆍ허경택, 2009, 백산출판사

 

동영상 <HARLAN ESTATE & The Naples Winter Wine Festival Video Production San Francisco> (4:57)

영상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Q0TEHWKR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