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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첫사랑

by 앰코인스토리 - 2018. 9. 11.



친한 선배가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고 초대를 해서 선물을 사 들고 방문을 하게 되었다. 예정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초인종을 누르다 보니 선배님은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일찍 왔네!”
“네, 길이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었네요. 뭐 하고 있었어요?”
“그랬구나! 마른빨래를 막 정리하고 있었는데, 얼른 들어와.”
기쁜 얼굴로 반가이 맞이해주었다.
“제가 빨래 개는 거 도와드릴까요?”
“그러면 좋고. 나는 식사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선배의 빨래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꽤 오래된 한 벌의 옷과 마주하게 되었다.
“선배 이 옷은 꽤 오래된 거 같은데, 버리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자, 선배는 “아. 그거! 나에게는 소중한 옷이라!” 한쪽 소매가 닳았고 색은 많이 바래있었다.
“그건 내 첫사랑이 주었던 선물이었거든.”
“아! 그렇군요.”
남자에게 첫사랑만큼 가슴을 뛰게 만드는 단어가 있을까? 누군가 한 번쯤 애틋하고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은 있었으리라.

내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친구들 만남에 여자 후배가 나오겠다며 전화를 했고, 혼자 나오기 뭐해서 친한 언니와 함께 나온다고 했다. 큰 기대 없이 나간 그 자리에 여자 후배가 데리고 나온 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다름이 없었다. 나까지 다섯 명의 남자가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큰 눈과 연예인 뺨 치는 큰 마스크와 시원시원한 말투에 남자들의 시선이 그 여성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때 가수가 꿈이었다는 말에 노래가 듣고 싶다는 핑계로 노래방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를 감미롭게 <소양강 처녀>를 애절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가수가 꿈이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흥겹게 보내고 노래방을 나와 집으로 가자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밖은 아수라장 상태였다. 노래방 들어갈 때만 해도 맑았던 날씨였는데 언제부터 비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늘이 펑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붓고 있었다. 도로는 물바다가 되었고 주말을 즐기기 나왔던 사람들이 택시를 서로 잡기 위해 뒤엉킨 상황이었다. 쏟아지는 비가 언제 그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늦은 시간이라 여자들은 귀가를 시켜야 하겠고 무작정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거의 30여 분을 씨름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같은 방향에 사는 남자친구 한 명과 여자 두 명을 함께 태워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전화로 걸려 왔다. 그 여자 후배 언니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즐거운 시간 함께 해서 고마웠고, 무엇보다도 많은 비를 맞으며 택시를 잡아줘서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전화번호는 같이 택시를 타고 갔던 친구에게 물어봤다는 것이었고, 첫 만남 속에서 많은 배려심을 보게 되어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만나 난생처음 재미있는 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늦은 밤, 한 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내 생애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그렇게 첫사랑의 추억에 잠겨 있는 순간 선배가 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해. 여러 번 불렀었는데.”
“그래요?”
“맛있는 찌개를 만들어 봤는데 간이 맞는지 봐줘.”
오랜만에 떠올려 보게 된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된장찌개 맛이 더 달게 느껴졌다. 그녀도 된장찌개를 참 좋아했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