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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사라진 마을


고속도로를 나와서 자동차 전용도로인 50리 길을 단숨에 달려 샛길로 접어드니 환호성이 터진다. “저기 좀 봐. 부항댐을 가로지른 출렁다리와 집라인(zipline)이야.” 소문으로 듣고 인터넷에서 첫인사를 나눈 그 물건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다시 산등성이 사이로 새로 조성한 신작로를 10여 분 달리니 목적지다.
신축한 회관에 도착하니 재종동생이 반가이 맞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때로는 동생이 반기더니,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때는 노인들이 모인 방을 찾아서 큰절을 드렸는데, 이제는 우리 또래가 어르신이라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행이랄까? 아흔을 넘긴 어머님과 각별하시던 분께서 양손을 부여잡으며 “엄마 생각나지. 전에는 나와 같이 절을 받았는데…”라는 울먹임에 나 역시 목이 멘다.
서울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 45명과 부산, 대구, 김천에서 온 출향민들이 어울리니 100명은 넘을 듯하다. 작은 마을로 변했다지만, 이러한 대인원이 모여서 먹고 즐기는 일은 근동에선 우리 마을만의 자랑거리다. 총회가 끝나자, 비슷한 나이들끼리 차일 속에 자리를 잡았다. 130여 호가 살던 마을은 수몰되고 산등성이에 새로 조성한 15가구의 주민들이 준비한 출장 뷔페를 즐기면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못다 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좋은 일은 늦게나마 축하인사를 건네면 되지만,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소식을 접하니 할 말을 잃는다.
수몰 뒤에 이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많이도 변했다. 집은 철거되어 빈터와 골목길이 물에 잠겼다. 명절 때면 편 담과 중간 담으로 나누어서 돌팔매질하던 산꼭대기는 대지로 변했다. 매일 다니고 뛰어놀던 산천이 물속에 잠겨 추억이라곤 찾을 길이 없는데도 이곳을 고향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한쪽에서는 가수 활동을 한다는 여동생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두어 시간 계속된 여흥도 시들어 갈 무렵, 강을 건너고 수풀을 헤치며 가족 묘역을 찾았다. 맏이로 태어나서 남다른 호강을 누렸지만, 나는 이분들께 해드린 것이 없음을 헤아리며 참회의 절을 드렸다. 잔디 사이로 솟아난 잡초를 뽑으며 회상에 젖다가 내려오니 헤어질 시간이다.
기사께서 여러 번이나 승차를 독촉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한 이야기 또 하며 지내는 통에 40분을 지체하고서야 시동이 걸린다. 그런데 다음 달이 여든이라는 친척형님의 이마에 피가 흘러 또다시 출발이 지연된다. 형님이야 술김에 전봇대를 들이받았다지만, 친척들의 걱정이 보기에 안쓰럽다.
차가 출발하기 전, 할머니 몇 분이 올라오더니 검은 봉지를 돌린다. “별거 아니지만 칠십 이상의 노인들이 정성껏 뜯은 쑥으로 만든 떡이니 고향의 정이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드세요.” 이 말씀이 유일하게 고향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고속도로에 오르는 길, 창밖을 바라보며 수필을 쓰듯 시 한 수를 읊는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찾아간 고향은 단숨에 오십 리 십리 길은 예 같건만 / 부모, 친구는 오간 데 없고 형제들이 벌초하던 선산만이 외로이 맞아주네 / 잠긴 집터엔 만감이 오가지만 산딸기 따 먹던 담장이 추억을 되살리네.”


글 / 사외독자 김성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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