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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추천책읽기] 일상의 질감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라디오작가들

by 앰코인스토리 - 2018. 6. 22.


일상의 질감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라디오작가들의 소담스러운 이야기


요즘은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전에는 소설이라도 한 편 써내어 등단해야 작가라고 불렸던 반면, 요즘에는 다양한 매체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지요. 방송작가, 여행작가, 사진작가, 그림작가, 일러스트작가, 웹툰작가, 캘리그래피작가처럼 다양한 분야에 ‘작가’라는 이름을 덧붙이는 걸 보면 作家라는 한문의 뜻처럼 무엇인가를 손수 지어내는 사람을 통칭해 작가라고 부르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작가가 고유한 매체에 그림을 짓고, 글을 짓습니다. 저는 웹툰작가도, 일러스트작가도 좋아하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말맛을 지어내는 귀재들을 만나볼까 합니다. 방송작가 중에서도 특별히 라디오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단어 하나가 가진 힘이 얼마나 센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지요.


라디오라는 매체는 참 독특합니다. 영상 매체의 등장 이후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울려 퍼질 정도로 라디오라는 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물론 청취율의 압박은 예전보다 심해졌겠지만 라디오는 건재합니다. 눈으로 훑고, 손으로 만지는 TV나 패드의 감각보다 귀로 듣는 소리가 훨씬 더 감성적일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라디오에서 문득 흘러나온 음악이 마음 한구석을 간질이는 날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말랑말랑한 감성이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하지만 라디오가 정말 매력적인 이유는 라디오 디제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어도, 꼭 내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했던 기분과 비슷합니다. 편지나 문자로는 다 할 수 없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다행스러워 한숨이 포옥 새어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과 다정함은 이런 기분과 비슷합니다. 어떤 날엔 마치 내 옆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언니 같기도 하고, 어떤 밤엔 피곤했던 하루를 나지막한 목소리와 조용한 음악으로 위로해 주는 오빠 같기도 합니다.


사실 라디오 디제이들의 멘트는 디제이들이 직접 준비하거나 즉흥적으로 애드립을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라디오 방송작가들이 꼼꼼하게 써주는 대본에 기인합니다. 그렇게 치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방송할 일정한 분량의 라디오 대본을 써 내려가는 라디오 방송작가들이 참 대단합니다. 청취자들을 행복한 기분에 둥실거리게 하고, 웃음을 터뜨리게도 하고, 울컥 눈물이 나게도 하고, 피곤한 날을 위로하기도 하는 진정한 언어의 마술사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라디오작가들이 쓴 책을 읽으면 글을 읽으면서도 귀로 듣는 기분이 듭니다. 게다가 그들이 매일 방송 원고를 쓰면서도 방송을 통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요. 이번 달엔 라디오작가들의 책들을 골랐습니다.



오랫동안 손을 잡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의 중력」 

이은재 지음, 베네북스

라디오를 잘 안 듣는다는 사람도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실 겁니다. 이은재 작가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작가로 활동을 시작해서 오랫동안 라디오와 TV를 누빈 베테랑 방송작가입니다.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지요. 사랑에는 고유의 중력이 있어서 저항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끌려간다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다니요. 이은재 작가는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이별도 없음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연인, 가족, 친구, 동료에 이르는 수많은 인연 사이에서 나의 중심을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책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행복한 인연에 이를 수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의 중력은 한순간의 끌림이 아니라 오랫동안 서로를 붙잡아 주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가 된 시간에 꺼내 보는 온전한 나의 진심

「아주, 조금 울었다」 

권미선 지음, 허밍버드

종일 꾹꾹 눌러두었다가,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음 지었다가, 혼자가 된 시간에 비로소 눈물을 흘려 본 적 있으신가요. 살다 보면 한 번쯤 있기 마련이지요. 오직 나만을 위해 끄억끄억 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 말입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외로워지는 시간, 괜찮은 줄 알았는데 문득 서늘해지는 마음,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별의 순간이라던가 다 알면서도 놓을 수 없어서 괴로웠던 순간. 이런 순간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면 이 책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15년 동안 라디오작가로 활동했던 권미선 작가는 짙은 감수성을 녹여내어 책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눈물 흘리지 못했던 당신도 작가와 함께 눈물이 차오르는 섬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바탕 울고 나면 오히려 후련해질 것도 같습니다.




싱그럽고 유쾌한 행복 연습

「설렘의 습관」 

송정연, 송정림 지음, 박하

송정연 작가와 송정림 작가는 자매입니다. 언니인 송정연 작가는 <이숙영의 러브FM> 메인작가로 활동 중이고, 동생인 송정림 작가는 <세상의 모든 음악> 등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들을 맡았지요.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행복을 지르라고 부추깁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정판이라면, 게다가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두 작가는 꼭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제안합니다. 선글라스 끼고 미니스커트 입고 설거지하기, 침대에서 라틴 댄스 추기, 거품 목욕하고 시원한 과일 먹기, 졸업한 지 오래된 초등학교 다시 찾아가기 같은 일들이지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이 더욱 건조해진다고 느끼신다면 조금 더 인생을 촉촉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계획해 보시면 어떨까요.




인생의 길을 여는 문학 속 명문장들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유선경 지음, 샘터

유선경 작가는 <유열의 음악앨범>, <출발 FM과 함께> 같은 라디오 방송의 작가로 활동했고, 「문득, 묻다」 시리즈와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같은 책들을 냈습니다. 작가는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인 상실, 불안, 고독, 자유라는 네 개의 주제에 어울리는 책을 열 권씩 골랐습니다. 작가가 고른 책도 책이지만, 네 개의 주제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근사합니다. 상실은 허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음을, 불안은 앞을 살펴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맹군임을, 고독은 결정된 시간이 아니라 결정할 시간을 살고 있음을, 자유는 움직여보아야 한계를 알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하지요. 시간의 지혜를 품은 말들로부터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위로받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배나영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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