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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이야기] 사랑과 연정, 2편

by 앰코인스토리 - 2018. 5. 15.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3. 사랑과 연정 사이


일반적으로 작가가 이른바 ‘사랑’ 혹은 ‘연정’을 모티브로 저작함의 목적은 극단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째는 자신과 이루어진 사랑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자신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전자는 주로 그 내용에 있어서 달달하면서 서로 간의 무한한 사랑에의 속삭임이 자연스럽게 골간을 이룰 것이고, 후자는 분명 그 애틋함과 고통 그리고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좌절을 통한 결과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래 표는 그런 사랑과 연정이 담긴 네 인물의 짧은 요약입니다.



스탕달의 <연애론>에 보면 사랑을 미(美)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네 가지(열정적인 사랑, 취미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허영적인 사랑)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랑의 성질이나 분류를 떠나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든 이성에 대한 연정의 감정이든 동일한 사랑의 범주로 보면서 다소 이성에 대한 연정에 치우쳐 논하고자 합니다. 그 논의는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고 스탕달의 <연애론> 중에서 적절한 문구를 인용하여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과 사랑해 가는 과정에서의 고뇌, 그리고 사랑의 아픔 및 그 결과로서의 일종의 절망과 좌절 혹은 희망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랑이란 감정은 쉽게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고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란 결코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감정이라서 조심하면 피할 수 있지만 그것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답니다. 한 번 생기면 생명이 다하거나 희망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죽지 않은 감정이 사랑인 것이지요.’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은 우리에게 거짓 희망을 주며 심지어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도 우리로 하여금 집착하게 만듭니다. 또 행여 잃어버린다 싶으면 더욱 격렬한 정열이 뒤쫓아 가뜩이나 쓰라린 심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런 감정입니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이란 감정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엄습해 온다는 진행형보다는 오히려 엄습해 와 있었다는 완료형이 옳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첫눈에 반했다 라는 표현으로 위 도표의 네 인물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자신들의 심장에 큐피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습니다. 슐리만이 민나를,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괴테가 샤를로테를, 서지마가 임휘인을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만나서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 주인공들이 반드시 첫 만남부터 사랑의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때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슬며시 젖어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슐리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짝사랑이나 연정인데, 그들은 그 감정을 어느 순간 깨닫고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설렘이나 혹은 기대감의 불명확한 그 무언가에 직면할 때 그 당사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유혹자, 나의 사기꾼, 나의 살인자, 내 불행의 원천이요, 내 기쁨의 무덤이며, 내 절망의 심연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 스탕달 <연애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날 밤, 큰 행복을 앞에 두고 있으므로 그때가 오기까지의 1분 1초는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 된다. 열에 들뜬 것처럼 각가지의 일에 손을 대었다가는 팽개친다. 줄곧 시계를 본다. 잠깐 보지 않은 동안에 10분이나 지나고 있다면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 스탕달 <연애론>


이런 예기치 않은 사랑의 감정은 때로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되지만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상황에 따라 두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 감정을 억지로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감정은 인간에게 다분히 본능적인 감정이며, 때로는 마치 긴 시간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찾아온 듯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르테르처럼 누구나 그 감정의 진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검증하고자 합니다.


‘아아, 이 공허! 내 가슴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 단 한 번만이라도, 정말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내 가슴에 안아볼 수만 있다면, 이 공허는 완전히 메워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아, 무의식중에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발이 탁자 밑에서 서로 부딪치기라도 할 때 내 혈관이란 혈관이 얼마나 마구 뛰고 치솟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불에라도 덴 것처럼 손과 발을 움츠린다. 하지만 곧 다시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서 살며시 몸을 편다. 내 감각 전체가 현기증에 걸린 듯 어지러워진다. 오, 그런데 그녀의 순진한 마음, 거리낌 없는 영혼은 사소한 정감의 표시가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를 모른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자비로운 사랑이여, 내게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랑이 같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예이츠 <하늘의 천> 중에서


‘다정한 영혼은 어차피 힘으로 빼앗는 일은 할 수 없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의 ‘자비’에 의하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어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스탕달 <연애론>


‘거룩한 하늘의 영이 감돌고 있는 입술이여! 나는 감히 네게 입을 맞추겠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토록 굳게 맹세를 하건만 나는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다. 나는 미치도록 키스하고 싶단 말이다. 아, 아! 그것이 마치 둘로 갈라놓은 장벽처럼 내 마음을 가로막고 있다. 그 행복, 키스할 행운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몸을 파멸시키고 속죄를 받아도 좋다. 이것을 어찌 죄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과 연정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해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부득이 정의한다면, 전자는 일종의 순수함이 내재한 남녀 간의 교감이라고 하겠고, 후자는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 즉, 도덕적 굴레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또 그것으로 말미암은 당사자만이 겪어야 할 아픔과 괴로움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연정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하지 못할 사랑은 없는 것처럼, 그러한 이성에 대한 연정의 감정을 단지 도의적 한계에 국한한다면 이런 훌륭한 문학작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결과가 있기 전 그 긴긴 여정은 참으로 힘든 고행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 중의 아무리 어려운 고통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불행한 자여! 너는 정말 천치가 아닌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너의 끝없는 정열을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나는 이제 기도라고는 그녀에게 바치는 기도밖에 모른다. 나의 공상 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뿐이다. 주위 세계 모든 것이 오직 그녀와 관련되어서만 내 눈에 비치는 것이다.’ - 단테 <신생>


‘나는 차가운 빗속에서 이 거리 저 거리로 돌아다닌다. 우연이-물론 이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나로 하여금 그녀의 창문 아래를 지나게 한다. 해가 저물 무렵,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그녀의 침실 창문에 던지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커튼이 살짝 열렸다가 곧 닫혔다. 마치 광장을 내려다보려는 듯이. 나는 심장 부근이 쿡쿡 쑤시는 아픔을 느꼈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하는 로테, 이 허탈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있는 나의 꼴을 당신이 보신다면! 내 마음은 메말라질 대로 메마르고, 가슴속이 벅차도록 넘치는 순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행복한 시간은 한시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침마다 내가 괴로운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헛되이 그녀를 향하여 두 팔을 뻗고 더듬는다. 그녀와 나란히 풀밭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키스를 퍼붓는 천진난만한 즐거운 꿈이 보람 없는 착각임을 깨달으며, 나는 밤마다 침대 속에서 안타깝게 그녀를 찾아 헤맨다. 아아, 그리하여 꿈결같이 잠이 덜 깨어 그녀를 향해 더듬다가, 마침내 정신이 들면 억눌린 가슴 속에서부터 눈물이 줄을 이어 쏟아져 나온다.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나는 어두운 앞날을 바라보며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처럼 연정이란 것은 반드시 아픔이 따르기 마련인 듯합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인 헬레네를 트로이로 납치한 파리스로 인하여 결국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에 의해 망하고 맙니다. 이렇듯 연정을 품고 연정의 감정을 실행에 옮긴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죽음으로의 결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달콤한 꽃이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가서 그것을 꺾을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눈에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것은 제외하고라도 사랑은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절망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인생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 죽음의 공허밖에는 남지 않는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이든 연정이든 그 결과가 반드시 베르테르식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갖는 그런 특별한 감정이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강요한다고 갖게 되거나 강요하지 않는데 저절로 그 마음속에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위의 위대한 네 명의 인물처럼 스스로 그 아픔을 어디에 형상화하여 치유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젊음의 때에 불같은 사랑의 단 한 번도 겪지 못하고 지나감은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이다.’라는 혹자의 말처럼, 그 사랑의 감정은 매우 소중하며 비록 이런 유명한 인물이 아니어도 개인에게 있어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젊음이라는 시간의 단위 자체도 극히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라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열정적인 연애는 남자의 눈에 숭고하게 비치는 모든 자연을 마치 어제 새로이 창조된 형태로 제시한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향해 열린 이상한 광경을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는지 놀라워한다. 모든 것은 새롭고 싱싱하기만 하여 가장 정열적인 흥취를 돋운다. 사랑을 하는 남자는 그가 만나는 모든 풍경의 수평 선상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본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천 리 길을 가면 수목도 바위도 그녀에 관해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준다.’ - 스탕달 <연애론>


‘신중한 남자는 언제나 주저한다. 믿을 수 없는 남자가 많음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여자 쪽에서도 잘못이 없는 남자에게는 언제까지나 한숨만 짓도록 버려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녀가 주는 보물의 가치는, 그것을 맛본 자가 아니고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값이 비쌀수록 놀라운 것이다. 사랑의 행복은 치른 고생에 의해 가치를 갖는다.’ - 스탕달 <연애론>


‘그녀는 나의 무절제한 생활을 나무랐다. 그러나 나무라는 그녀의 태도가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그녀는 내가 포도주 한 잔으로 기분을 내기 시작해서, 한 병을 몽땅 마셔버리는 버릇을 말하는 것이었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그리움에 못 이겨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석] 본문 원문: 《연애론》 홍신문화사 2013 스탕달 지음, 권오석 옮김. 《신곡, 신생》 동서문화사 1973 단떼 지음, 허연 옮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각 책의 전체 내용 중에 인용 및 재인용 하였으며, Page는 기재하지 않음.


사랑이란 감정이 그때를 알고 그 예의를 알아 적절히 내게 찾아왔다면 이런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공감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찌 그 아픔을 단지 이런 몇 글자의 인용문으로 형용할 수 있겠는지요! 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의 가사처럼 “세월은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가고 우리는 지난 일을 잊게 되겠지만, 만약에 우연히 그 선술집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 웃으며 지난 시절을 얘기하겠지.”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상흔을 위하여!


다음 호에는 이번 호에 다루지 않은 중국인 徐志摩의 삶과 사랑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해두기 


词语 (어휘): 绮罗 (繁体字 : 綺羅)

拼音 (병음): qǐ luó

例句 (예문) : 绮罗指华贵的丝织品或丝绸衣服。 《东周列国志》第八十一回:

Qǐluózhǐ huáguìde sīzhīpǐn huòsīchóuyīfu。 《dōngzhōulièguózhì》 dìbāshíyìhuí:

“勾践命范蠡各以白金聘之。服以绮罗之衣,乘以重帷之车,国人慕美人之名,争欲认识,都出郊外迎候,道路为之壅塞。”

“gōujiànmìngfànlǐ gèyǐbáijīnpìnzhī。 Fúyǐqǐluózhīyī, chéngyǐzhòngwéizhīchē, guórénmùměirénzhīmíng, zhēngyùrènshi, dōuchūjiāowàiyínghòu, dàolùwéizhīyōngsè。”


“기라(绮罗)는 화려하고 진귀한 명주실로 짠 직물 혹은 비단옷. 《동주열국지》 제81회에는 “월왕(越王) 구천이 범려에게 명하기를 백금을 들여 ‘서시(西施)’,’정단(郑旦)’을 초빙해오라고 하였다. 기라의 옷을 입고, 두껍게 가린 마차를 탔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 용모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서로 다투어 보고 싶어 모두 교외로 나와 맞았는데, 도로가 다 막힐 지경이었다.”


기라라는 단어는 중국 고소설 부분에 자주 보이는 표현인데, 주로 아름다운 여인이 입는 옷을 뜻하면서 그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 가벼운 기라조차 버티기 힘들다는 표현으로 묘사되는 가녀린 여인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를 연상케 합니다. 중국 전기소설을 다룰 때 다시 부연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