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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이야기] 사랑과 연정, 1편

by 앰코인스토리 - 2018. 5. 15.


슐리만 하일린츠(1822-1890)를 앞에서 언급하면서 그의 ‘트로이 전쟁’에 대한 사실적 고증에 대한 부분은 우리에게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원래 신화의 정의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기로 하였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장에서는 과연 슐리만이 왜 이렇게 신화에 대하여 고증하고 싶어 하였는지 그 원동력과 동기부여의 원천에 대하여 그의 자서전의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사랑의 아픔과 극복 (첫사랑 민나)


나는 1822년 1월 6일 메클렌부르크 슈베린(독일 북부에 위치한 대공국)의 작은 도시 노이부코프에서 태어났다. 목사이신 아버지가 이곳 안커스하겐에 부임하게 되어 나는 8년 동안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이곳 마을은 유령 이야기나 온갖 기괴한 사건들의 소문이 무성하여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쉽게 빠져드는 나의 천성에 열정의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문헌학자이거나 고고학자인 것은 아니셨지만 고대의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흥미를 갖고 계셨는데, 특히 호메로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활약이나 트로이 전쟁 때의 사건들을 들려주실 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어느 순간 나 역시 트로이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가 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으로 이사 와서 새로운 나의 관심사에 빠져있을 때 나는 우연히 나의 첫사랑 ‘민나 마인케’를 만나게 되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고는 하지만 한낮이 아니고서는 아직은 조금은 차가운 기운이 공기 중에 스며있는 4월 말 어느 날이었다. 책을 보고 있자니 오후의 나른함으로 기지개를 켜면서 문득 창밖을 보는데 희게 반짝이는 햇살이 나의 발걸음을 저절로 밖으로 옮기게 했다. 교회 주위를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거니는데, 앞산을 수원으로 해서 내려오는 가는 실개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마치 영롱하고 청명한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려오면서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함께 마치 한 곡의 ‘봄의 왈츠’를 연주하는 듯하였다. 그렇게 물길을 따라 가늘게 나 있는 오솔길을 거닐기를 한동안, 문득 내 또래의 여자아이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한낮의 봄기운을 만끽하고자 이렇게 나와 같은 길을 역으로 걸어오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라 서로 눈빛만 교환하였는데, 잠시 후 그 둘 중에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혹시 여기 교회 목사님 댁 아들 아니니?” 하고 몸을 돌려 3~4m의 거리를 뒤돌아 오는데, 조금 전에는 잠깐 스쳐 지나가서 인식하지 못하였지만,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 가슴이 답답해 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하얀 피부에 똘망똘망 한 눈과 눈동자, 앵두 같은 입술과 오뚝한 콧날, 이런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작고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조금은 브론디 하면서 누가 땋았는지 모르는 뒷머리는 뒤로 곱게 묶여 내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기라(綺羅)와 같이 하늘거리면서 찰랑찰랑하고 치마에는 주름이 살짝 져 있는 원피스였는데 그것조차 힘에 겨워할 정도의 가녀린 몸매는 어디서 풍겨오는지 모르는 향기로운 봄의 내음과 함께 나로 하여금 천상의 선녀라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 계속된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대화상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록 어린 나이의 순수함이었지만 애정이 싹트게 되었고 내 마음속에서는 민나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짧은 유년의 행복은 어머니의 뜻밖의 죽음으로 큰 전환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복은 쌍으로 오지않고 화는 홑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아버지의 교회와의 불화와 함께 마인케 집안은 나와 민나의 만남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민나를 잃었다는 강한 충격과 슬픔은 어머니의 죽음조차도 잊게 하여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미래에 대한 생각조차도 잊게 할 만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비록 현재 나의 현실과 민나의 현실은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반드시 성공하여 나야말로 민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리라는 굳은 마음속 다짐이 그것이다.

[주석] 본문 원문 : 《하인리히 슐리만 자서전-트로이를 향한 열정》 일빛 2004 하인리히 슐리만 저, 김병모 옮김 15-42쪽 편집 및 내용추가.


위의 내용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자서전 번역본의 앞부분인 <운명을 바꾼 어린 시절의 감동>과 <첫사랑의 떨림, 민나>의 내용을 기본으로 요약하고 필자가 민나와의 첫 만남 부분은 어느 정도 상상 및 각색하여 추가 편집한 것입니다.

슐리만은 자서전의 도입부에 첫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였는데, 이렇듯 민나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아픔을 오히려 반드시 성공함으로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 경제적 성공으로 인하여 ‘트로이’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슐리만의 고고학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민나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사실적 내용이든 혹은 소설의 창작물이든 이런 일종의 극적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상투적인 내용의 전개일 수도 있습니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더욱 성장하여 성공한 그런 류의 내용 서사는 영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이 그 대표적 예라 하겠습니다. 그 내용 역시 ‘토토’와 ‘엘레나’의 첫사랑과 공교로운 사건으로 결국 인연이 되지 못하고, 이에 토토는 그 아픔을 유명한 영화감독이 됨으로 승화시킨 것은 내용 면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상투적이든 일반화, 도식화되었든 상관없이, ‘첫사랑’이나 ‘연정(戀情)’이라는 텍스트는 상당수의 저명한 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스스로 겪었던 사랑의 아픔, 즉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일종의 핸디캡이라 정의한다면 그 핸디캡을 명저를 저술함으로써 해소하거나 혹은 저작의 주인공 내면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형상화하였는데, 그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있어 그 줄거리와 함께 사랑과 연정에 대하여 부연(敷衍)하고자 합니다.


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부 : 로테와의 만남

젊은 베르테르는 그의 어머니의 유산정리를 위해 숙모님이 있는 동네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일을 처리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등의 전에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모든 소소한 일까지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빌헬름과 서신으로 교환한다. 그렇게 지내던 중 베르테르는 우연히 이 마을의 어느 무도회에 참석하는데 거기서 로테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6월 16일 : “빌헬름! 어떤 여인과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아 버렸다네, 해와 달과 별은 조용히 궤도를 돌고 있지만 나는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 못하게 되었고,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네.”


2부 : 로테에 대한 지독한 사랑

그녀는 여덟이나 되는 동생들을 잘 돌보는 다정다감하면서도 어렸을 때 소설을 좋아했던 나름대로 지식이 있는 매력적인 숙녀로서 약혼자가 타지에 있는 동안 베르테르를 대화 친구로서 자주 만나게 되고 서로 친해진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로테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이미 부모님에 의해 정해진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음을 까맣게 잊게 한다. 타지에 가 있던 약혼자가 돌아옴으로 인하여 베르테르는 심한 고뇌를 하지만 로테와의 만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의 이상주의적 성격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매우 주도면밀하고 현실주의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약혼녀인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관심을 알고 있었지만 지성인으로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 이에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의 권유도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다잡고자 다른 도시의 공사 비서로 지원하여 떠난다. 그동안 로테와 알베르트는 결혼하고 이 사실을 베르테르는 얼마 후에 알게 되는데, 둘에 대한 왠지 모를 배신감이 전율하며 온몸을 휘감고 오히려 마음의 번뇌는 더욱더 커지게 된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그의 심리 상태는 이미 알베르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갖게 되는 극히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8월 21일 : ”내 마음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변한다네, 알베르트가 죽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녀는.... 그래“.

10월 30일 : “나는 벌써 몇백 번이나 자칫 그녀의 목에 매달릴 뻔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앞에서 얼씬거리고 있는데, 손을 뻗칠 수가 없을 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신만이 알 것이다. 손을 내밀고 붙잡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어린애들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을 내밀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11월 21일 : “로테는 자기 자신과 나를 아울러 파멸시키는 독소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있다네.”

12월 6일 : “로테의 환상이 언제나 눈앞에 나타난다네, 눈을 떴을 때나 꿈을 꾸고 있을 때나 한결같이 내 마음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네.”


3부 :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

베르테르의 가슴속에는 쌓이고 쌓인 사랑에 대한 욕구 불만과 이에 따르는 좌절감이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 얽히고설켜서 그를 점차 병들게 하였다. 그의 정신의 조화는 깨어지고 마음속의 흥분과 격정은 이성의 힘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더할 바 없는 불길한 결과를 일으켰는데, 결국에는 일종의 허탈감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절망감만이 그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 1849년에 간행된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의 저서로써, 기술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이란 신과의 관계 상실을 뜻하며 오직 신만이 치료할 수 있다.” - Desperation: 절망, 좌절, 자포자기, 필사적임.

즉, 로테에 대한 사랑이 우울증적 병태로 나타나 몸과 마음은 이미 은연중에 절망의 결과인 죽음을 내색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필사적인 삶을 갈구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치료 약은 베르테르에게 신과 같은 로테 뿐이었다.

12월 14일 :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또 아무것도 구하지 않소, 이제 나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알베르트의 품에서 당신을 빼앗는다는 것은 죄가 되겠지요. 죄? 좋습니다. 나는 그 형벌을 스스로 내리려 합니다.“

하인을 시켜 알베르트에게 가서 여행을 핑계로 권총을 빌려오게 한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그 권총을 건네주더라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그것을 건네받는다.

날짜 미상 : “이것은 당신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털어주셨다지요? 나는 수없이 그 권총에 입을 맞췄습니다. 당신이 만졌던 물건이니까요. 로테여! 실은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아아, 이제 이렇게 받게 되었군요.”

“자아, 로테여! 나는 죽음에 취하는 이 차디찬 무서운 잔을 겁내지 않고 손에 들겠습니다. 당신이 손수 내어준 잔입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내 평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의 쇠문을 두들기면서도 이렇게 냉정하고 태연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다니, 로테여! 당신을 위해 나를 바칩니다. 그럼 로테여, 안녕!” (날짜가 없고 죽은 후 주머니에서 발견됨)


소설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절망감으로 자살함으로 인하여 18세기 말의 유럽 전역에 만연해 있던 감상주의(sentimentalism)와 낭만주의(romanticism)를 저변으로 한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즉, 일종의 자신과 동병상련의 관계가 있는 타인이 죽으면 따라서 자살한다는 반향(Syndrome)을 일으킨 그 유명한 괴테(1749-1832)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내용입니다. 번역본을 개인적으로 중요 부분만 날짜순으로 요약하여 서술하였는데, 내용 서사가 서간체 형식이면서 그 전개 속도가 빠르고 한 번 잡으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저작 배경은 괴테의 경험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샤를로테 부프(Buff, Charlotte)’라는 다른 사람의 약혼녀를 사랑한 것과 친구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슐리만의 자서전의 내용과 비교해 보더라도 본인의 경험을 제재로 한 것은 사실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괴테 자신이 저작의 주체로써 스스로 감정을 주인공 베르테르에 전가한 것은 현실의 샤를로테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뇌를 이른바 희생양으로서 베르테르를 살해함으로 종결짓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과 고고학적 업적, 그리고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떻게 보면 유사한 귀납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독특한 공통점이 있는데, 생애로 보면 독일의 19세기 초를 공유하면서, 둘 다 ‘호메로스’를 탐독하였고, 인생에 이성으로써 ‘민나’라는 이름의 여성을 깊게 좋아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석] 본문 원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원작 전체 내용 요약 인용함(특히, 문학사조 측면에서 보면 당시 정치, 사회의 배경 상 이데올로기의 전이로 인하여 18세기의 유럽의 문학사조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중국 ‘원앙호접파(鴛鴦蝴蝶派)’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서침아徐枕亚의 소설 <玉梨魂, 1913>은 이른바 중국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少年维特之烦恼’으로까지 소개될 정도로 내용이나 구성 형식이 매우 닮아있다.)


(다음 편에 계속)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