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기 3명이 같은 대학에 입학해 친구 사이로 지내다 보니 ‘삼총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이 수도권으로 이주해서는 모임에 얼굴도 비치지 않고 소식도 뜸해서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다. “어, 시야-내가 생일이 빠르다고 그렇게 부르더라-가 웬일이야. 전화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는 모깃소리만 하고 전화는 끊겼다. 재차 걸어서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야. 어디 아프냐?” “그게 아니고 휴대폰이 70년대 것이라서 그래. 이만 끊는 게 좋겠다.”

‘그 사이 철학자가 되셨나. 우울증에 걸렸나. 늦기 전에 삼총사가 함께하는 자리를 주선해야겠구나.’ 소중한 인연이 너무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고향친구와 중고교 동기생들은 세 명 중 한 명꼴로 유명을 달리했다. 학창시절에 절친이었던 친구들도 문과와 이과로 진학하여 성격과 취미가 달라지고 직업이 따로따로인 데다, 생활 환경도 다른 지역에서 50년 넘게 살다 보니 공동 관심사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 탓으로, 가끔 만나도 대화거리가 궁하여 떨어져 앉게 되고 소원해지는 게 아쉽다. 아내는 한 동네에서만 반세기 가까이 학부모회장으로 주민 센터와 아파트의 봉사단장과 교회의 권사로 일하다 보니 매일 만날 사람과 갈 곳이 있지만, 집과 직장만 개미 쳇바퀴 돌 듯한 나는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그나마 다행이랄까. 학창시절엔 말도 잘 나누지 않았던 동기와 퇴직 후에 연락이 닿았다. 이를 계기로 만남을 잇다 보니 요즈음은 매일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고, 한 달에 서너 번은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더구나 해외영업과 품질문제로 잦았던 해외출장의 경험담이 학창시절의 에피소드와 시너지가 되어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얼마 전에는 간 적도 갈 일도 별로 없는 강남대로에서 마주쳐, ‘전생에 인연’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부터는 맛집 찾아다니기에 재미를 붙였다. 만나면 세 시간 이상은 동참해야 하고 점심비는 1.3만 원 이하로 하되 번갈아 부담하기로 정했다. 초기에는 강남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주변만 맴돌다가 범위를 넓혀서 인근 구, 때로는 시내 중심가까지 순회 중이다. TV 화면에 엄지를 치켜들고 ‘맛도 그만, 가격도 그만’이라는 맛집을 찾고자 해도 찾을 수 있는 기능이 부족하고 몇 년 전부터 장롱면허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모 신문에서 ‘전통 맛집’이라고 소개해서 두 곳을 찾았지만 손님이 적어 썰렁한 데다 맛도 별로였다. 우리는 먹어본 적이 있는 곳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곳을 주로 찾는데, 만 원짜리 자장면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자반고등어는 연거푸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촌놈의 입맛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나 봐.’ 어제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앞으로 좀 업그레이드를 시켜볼까. 인천공항으로 가서 스테이크 썰어보는 게 어때?’ ‘좋아. 먼 곳이니 맹추위만 피해서 가면 언제든지 오케이.’ 어디든 전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되 먼 곳이면 더 좋겠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좋고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가급적 멀리 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우연히 접한 시 ‘수선화에게’의 마지막 두 줄이 심금을 울린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사람인들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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