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아내한테는 하루가 멀다고 안부전화가 오지만, 내게는 그런 행운이 드문 편인데 아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세종시에 집을 계약했습니다. 손자도 같이 가기로 했고요.” “수고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는구나!”

아들 가족이 여러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황금기를 헛되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아들은 세종시에서 출퇴근하고 며느리는 서울 소재 금융회사에 다니다 보니, 손자 손녀를 돌보아줄 사돈댁 옆에서 엉거주춤 사는 것이 벌써 7년 차다.

재작년 말에 며느리가 공채 합격으로 아들이 있는 곳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며느리의 합격은 그 분야에선 드문 일로 잠시나마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지라 불편과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들이야 여전히 주말부부 신세지만, 며느리는 새벽 6시에 통근버스를 타거나 7시에 출발하는 SRT를 이용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가까이에 산다고는 하지만, 사부인도 같은 시간대에 며느리와 맞교대를 해서 손자 손녀를 돌봐야만 했다. 처가 신세를 지는 게 우리 때와는 다르다지만, 그분이 받는 피곤과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언제인가 라디오에서 40대의 흙수저가 한 말이 생생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대학을 나왔다면, 아버지 세대가 역사상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소수인지라 주위의 부러움도 받았을 거고, 혼자 벌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조건을 다 갖추고 맞벌이를 해도 허겁지겁하는 세대 아닌가요. 미래는 더욱더 불안하고요.” 휴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한 우리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으니 얼핏 생각해선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파트를 재계약할 시기가 다가오고 손자는 안 가겠다고 버텨서 고민 중인 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손자는 외할머니가 할마 역할을 해주기로 하고 손녀만 데리고 이주하는 것으로 알려와서 가슴 한쪽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있었다. 그러던 것이 신학기를 한 달여 앞두고 손자가 “가 보고 안 좋으면 다녔던 학교로 되돌아갈 거야.”라는 조건부 동참이라지만,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희소식이다. 이주 예정인 아파트를 검색해보았더니 손자가 다닐 초등학교는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고, 손녀는 며느리가 출근길에 데려가서 1층에 있는 유치원에 맡기고 퇴근 시에 동참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초등학교 홈페이지에는 ‘학부모 돌봄 모임’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맞벌이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하다.

다음에 만나면 며느리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대견한 며느리를 두어서 자랑스럽구나. 사부인에게도 우리 부부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라.”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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