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코코리아 사내 독후감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작 

「언어의 온도」를 읽으며


책을 잘 읽지 않았던 나에게 2016년 1월 ‘한 달에 한 권씩은 읽자!’라는 작은 다짐이 매달 한 권의 책을 구매하기 위해 서점을 가게 되었고, 그 책이 다음 책을 소개하게 되고 그렇게 작은 다짐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즈음, 회사에도 독서경영이 시작되었고 독서토론모임이 발족하면서 첫 번째 선정도서가 바로 작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이다.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글文], 지지 않는 꽃.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이렇게 3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책 「언어의 온도」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언어의 따스함과 차가운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물론 저마다의 언어 온도가 있으리라는 읽기 전에 짐작하게끔 하는 책이었다. 5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대부분 2~3페이지 짧은 문단으로 잘 정리된 간결한 내용은 글을 쓰기 위해서 고뇌하거나 감성의 인위적임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메모형식으로 잘 정리한 것 같은 평범함에서 여운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책 크기만큼이나 어디를 들고 다녀도 아무 쪽이나 왔다 갔다 읽어도 부담되지 않는 기승전결 형식의 이야기 연결이 아니라서 더욱더 편안함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말言.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로 시작하는 손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며 아직 열이 남아있어 저녁 먹고 약 먹자는 할머니의 말씀에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라는 물음에 작가의 예상이 철저하게 빗나가게 한 상처를 겪어본 사람의 느낌,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할머니의 대답이 따스함으로 느껴지면서 책장을 넘겨본다.

95페이지, 원래 그런 거라니까! 원래 그래! 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데, 원래 그런 거라고 체념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를 알게 해준 단락. 체념은 국어사전에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이란다. 오지 탐험 전문가들은 “조난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건 식량부족도 체력 저하도 아닌, 희망을 내려놓는 순간 무너진다고 한다, 체념은 삶에 대한 의지까지 꺾는 것.”이라고 하니 나의 일상에서도 원래 그러니까! 하고 체념해 버리지 않고, 정말 그럴까? 하고 질문하고 직접 확인하고 조언을 구하는 일상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것으로 기억되는 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글文.

148페이지에서는 처음 접해 보는 단어! 톺아보다(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를 만났다. 맞춤법이 틀린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순간 스치는 사이에 그 의미를 읽으면서 내가 항상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 안의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던 단어였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다가 있고, 어떤 유형이 됐든, 깊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고, 어떤 자세로 노를 젓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건너고 있는지 살면서 한 번쯤은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는 작가의 생각에 100% 동감해 본다. 한 번쯤은….

201페이지, 역시 처음 접해 보는 단어! 볕뉘(작은 틈을 통해 비치는 햇볕)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라는 작가가 해가 산이나 지평선 너머로 차츰 넘어가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로 ‘뉘엿뉘엿’이 있는데, 볕뉘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은, 햇살보다 왠지 볕뉘라는 낱말이 잘 어울리는 듯하다는 작가의 단어 선택의 섬세함으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행行.

파주출판도시에 지혜의 숲이라는 대형 서가가 들어섰는데, 수십만 권의 책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으나 사람 손이 닿는 곳은 겨우 네 칸 남짓이고 나머지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전시용 도서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출판단지에 꼭 가봐야 할 명소’라고도 하고, ‘종이의 고향이 아니라 종이의 무덤이 됐다.’고 폄훼하기도 한다고 한다. 작가가 한가로이 지혜의 숲을 거닐다 보면 음악도, 그림도, 심지어 공간도 채우기보다는 비우기가 어려운 건지 몰라! 라는 생각을, 비우는 행위는 뭔가를 덜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비움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것이란다. 여백이 있는 공간을 만들면 신기하게도 그 공간을 다른 무언가가 채우기 마련인데, 반대로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 하다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를 정말이지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하는 공간이든 무엇을 하는 행동이든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 말할 수 없지만 항상 톺아보며, 볕뉘할 수 있다면 상시 새로움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80페이지, 가능성의 동의어. 학창 시절 사소한 잘못으로 교무실에 불려갔었던 작가. “선생님이 너 1층으로 오시래.”라는 친구 녀석의 잘못된 높임법을 듣자마자 무섭기로 소문났던 학생부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로 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된 높임법! 읽으면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선생님께서는 이면지 한 장을 꺼내더니 ”여기에 네 장점을 써 보자.”라며 칭찬과 지적이 적절히 혼재된 면담의 끝 무렵 “너처럼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라는 말씀에 당당하게 교무실을 나서면서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에 좋았었던 기억으로 회상하는 작가. 그 학생부 선생님께서 이런 작가를 만드셨구나! 라는 생각에 나의 학창시절을 오버랩해보며 또 한 번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시험결과 때마다 70명 중 끝에서 첫 번째 하던 불량기 다분했던 친구가 60등 정도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며 대여섯 문제 정답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사정하던 터에 별생각 없이 그러자! 했던 나. 4일간의 시험 중 마지막 시험일에 딱! 걸려서 교무실 앞 복도에서 둘이서 손들고 서 있었던 기억. 다행히 마지막 전 시간의 일이라 친구 녀석은 생애 첫 30위권! 물론, 다음 시험에 원상 복구되었지만, 돌아보니 한때의 하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었지만 그 친구에게 공부를 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짐을 가지게 했던 가능성(?)의 기억으로쯤으로 기억을 꺼내보게 된다.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라는 본문의 내용을 책 표지 뒷면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언어의 온도」. 이 책은 항상 회사의 책상 위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를 만나 정서적 화상을 입었을 때나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으로 나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음을 인지할 때마다 2~3페이지의 응급처방전으로 사용할 것을 다짐해 본다. 우리 모두에게, 나에게, 말言 하고 글文 쓰고 행行 하는 언어들이 있을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이 있듯이, 항상 들어오는 언어의 온도가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만큼 우리 모두에게서 또한 나에게서 나가는 언어의 온도들도 상대방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언어일지 생각해 보며 독후감 경진대회 응모를 해본다.


글 / K4 제조6팀 함성우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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