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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영화 '명량'의 인기와 새로운 리더에 대한 갈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16.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우리나라 해전사를 다시 썼다. 그것을 그린 영화 <명량>은 우리나라 영화사를 다시 썼다. 1천5백만 명의 관객을 넘어서며 역대 관객 동원 1위에 오른 후에도 인기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평론가들은 <명량>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우리 시대에 이순신 같은 참다운 리더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 시대에 이순신 같은 위대한 리더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리더는 이제 우리 시대에 통하지 않게 되었다.

 

첫째, 대중이 똑똑해졌다. 고등교육의 확대와 정보화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지식과 정보 격차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지식과 정보의 우위에서 나오는 힘은 사라졌다. 대중이 똑똑해지자 카리스마 리더가 힘을 잃었다. 정보화로 거짓이 통하지 않게 되자 권모술수를 쓰는 마키아벨리식 리더가 더는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둘째, 개인주의화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국가나 사회를 위해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공동체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풍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리더 계층의 희생정신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들에 대한 믿음도 줄어들었다. 더불어 민주화로 인해 권위적인 리더의 목소리가 힘을 잃었다.

 

셋째, 자본주의 가치관의 영향으로 물질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과거에는 경제적 이익보다 이념이나 명분 등 숭고한 가치를 중요시했다. 이러한 풍토에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상가적 리더도 줄어들었으며, 돈이 되지 않기에 이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리더십의 핵심은 신뢰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리더십의 대가인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는 그의 책 「워렌 베니스의 리더(김영사, 2008)」에서 미국에서 위대한 리더가 사라져 가고 있음을 개탄한다. 그러면서 변화된 시대에 리더가 되는 방법을 차곡차곡 설명한다. 베니스는 여러 분야에서 존경받는 리더 수십 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 책을 썼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4분의 3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라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 세상의 다양한 면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이 되도록 연마하라, 논리를 넘어 직관적이고 종합적으로 사고하여 자신과 세계를 보라, 참된 자아를 드러내고 표현하라, 역경을 극복하고 경험하면서 배워라.” 등등.

 

‘리더십’ 하면 떠오르는 비전, 열정, 성실, 신념, 도전, 긍정적 사고, 장기적 관점 등 리더십 스킬은 마지막 장에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리더십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서 마지못해 넣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베니스가 직접 경험한, 실패한 리더 ‘애드(가명)’의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난 애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녔다. 회계학 학위를 취득해 생산직에서 관리직으로 옮겼고 승진을 거듭해 결국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성실했고 적극적이었으며 일벌레였다. 회사의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고, 쓸모없는 직원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

 

회사의 CEO는 애드와 나이가 비슷한 50대 초반이었고 그 자리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야망이 큰 애드는 결국 같은 업종에 있는 회사로 옮겼다. 그 회사 창업자의 손자인 CEO가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2~3년 일하는 것을 지켜본 후 애드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애드는 회사를 옮긴 후 더 강경해져서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에게 훨씬 가혹하게 대했다.

 

▲  워렌 베니스 (사진출처 : www.news.usc.edu)

1년쯤 지나 애드는 COO로 승진했다. CEO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애드가 자신을 대신할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이사회에 그의 결심을 알렸다. 그러자 이사진 중 몇 사람이 애드는 너무 강압적이고 동료 임원과 직원들을 너무 거칠게 대한다며 반대 견해를 표명했다. 딜레마에 빠진 CEO는 저자에게 연락했고, 애드가 대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베니스는 며칠 동안 애드를 관찰했고 애드와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애드도 노력했다. 그는 거친 태도를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애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여전히 그를 경계하고 어려워했다. ‘새로운’ 애드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실하지 않다며 더 불편해했다. 이사들은 애드가 추진력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비전과 성품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성품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베니스는 애드에게 그를 CEO로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이사회에 그런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애드는 결국 동료와 이사진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는 진심으로 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동료들은 50대에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애드의 변화된 행동을 위선으로 보았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

 

리더십의 위기는 결국 신뢰의 위기다.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리더의 능력을 믿지 않게 되었고 희생정신이 없는 리더를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저자는 신뢰가 생기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일관성, 언행일치, 약속 등이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시종일관 같은 태도로 행동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며, 자기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리더는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애드는 일관되지 못했다.

 

베니스가 책의 4분의 3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리더가 되려거든 남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라.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라.”

 

 

리더십 스킬은 중요하지 않다. 리더가 되기 위해 자기표현과 학습이 필수적인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불확실하다. 변화에 대응하려면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계획과 행동을 적절히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중심에 변하지 않는 참된 자아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일관성을 느낄 것이다. 즉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학습을 통해 늘 변화를 추구하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불변의 것을 드러내야 일관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리더란 직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리더는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남이 시켜서 일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 리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준다.

 

<명량>의 인기 못지 않게 ‘의리’ 열풍이 불고 있다. 의리를 입에 달고 살던 배우 김보성은 일이 늘어나 그동안 못 갚았던 빚을 다 청산했다고 한다. 의리 열풍 역시 신뢰에 대한 갈증이 커져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리더를 찾고 있다.

 


워렌 베니스의 리더

저자
#{for:author::2}, 워렌 베니스의 리더#{/for:author}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08-04-28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는 주옥같은 통찰과 지성, 심오한 철학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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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병주는 _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다. 여러 기업체에서 강의도 하지만 글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느낀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항상 노력한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