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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역사 속 엔지니어] 윌리스 흄 캐러더스, 생활 속 팔방미인 섬유 ‘나일론’ 발명가

by 앰코인스토리 - 2017. 9. 12.


생활 속 팔방미인 섬유 ‘나일론’ 발명가 

윌리스 흄 캐러더스


사진출처 : https://www.kaufmann-mercantile.com/


미국 치과협회에 발표에 따르면, 1498년 처음 중국에서 칫솔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요, 대나무나 동물 뼈에 돼지 털을 촘촘히 박아 칫솔모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럽에서도 돼지 털 칫솔은 유행했지만 값이 비싼 탓에 한 개의 칫솔로 여러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세기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일론’이 발명되었는데요, 그 덕분에 다행히도 나만의 1인 1칫솔이 가능하게 된 시대가 열렸습니다. 1938년 미국의 듀폰사는 돼지 털을 대체할 나일론 솔을 개발하여 나일론 칫솔을 미국인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섬유 혁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일론 발명 덕분에, 이후로도 혁신적인 발명품들이 생겨나고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 깊숙이 여러 모양으로 나일론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신비한 섬유는 윌리스 흄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라는 화학자가 발명한 것입니다.


사진출처 : http://vancouverdentalgroup.ca/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캐러더스는, 타키오 대학과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 모교에서 일하다가 1926년 하버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활동을 했습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학생 시절 친구들로부터 교수, 박사로 불릴 정도로 명석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캐러더스는 ‘듀폰’이라는 회사로부터 초빙을 받게 됩니다. 듀폰사는 전도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을 영입해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듀폰사가 엄청난 양의 폭약을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얻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불명예에서 조금이나마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화학회사는 물론 순수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화학자도 크게 환영받지 못하던 때라, 캐러더스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젊은 과학도 캐러더스는 기업에 속한 연구원이 되는 것을 별로 탐탁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압박과 자신의 순수연구 열정 사이에서 많이 괴로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애초부터 무언가를 발명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과 학문적 욕구로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우연히 여러 가지 발견을 하게 되고 획기적인 발명품이 만들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elephantjournal.com/


1929년, 듀폰사는 에스테르(ester)라는 화합물을 연결하여 폴리에스테르를 최초로 개발합니다. 바로 캐러더스가 속해있었던 연구팀이 개발해 낸 것이지요. 그때까지 사용되던 인조섬유인 레이온은 천연셀룰로스를 원료로 사용하기에 생산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새로운 섬유의 발견은 섬유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획기적인 발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연구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열이나 물에 잘 녹았던 처음 발명품보다 훨씬 효용성이 좋은 합성섬유를 알아내었습니다. 하지만 캐러더스는 이 연구를 계속하지 않고 한동안 그냥 그 상태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평소 실용적 발명보다는 순수과학을 연구하거나 학문을 가르치는 일 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의 성향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공항을 겪으며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듀폰사 역시 기업 존립에 중요한 이윤창출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속한 과학자들은 소위 ‘돈이 되는 연구’를 하라는 회사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합성섬유의 연구는 시작되었지요.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


1934년 5월, 캐러더스의 연구팀 중 일원인 코프먼이 폴리아미드 섬유합성에 성공하고, 1935년 마침내 석탄(나중에 석유)으로부터 벤젠을 원료로 한 튼튼하고 질긴 합성섬유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을 훗날 듀폰사에서 ‘나일론’이라고 명명하게 되었지요.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이를 곧 상품화하여 회사를 일으킬 주력상품으로 삼게 됩니다. 이제는 나일론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회사의 최대 관건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캐러더스는 기업소속 유기화학자로는 최초로 미국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도 안았지만, 그의 마음속은 항상 지적 갈등과 극도의 우울감으로 시달렸다고 전해집니다.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여동생의 죽음으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결국 1937년 4월 28일, 한 호텔에 투숙해 청산가리를 먹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사진출처 : https://www.chemheritage.org/


그가 사망한 뒤에도 나일론을 이용한 신제품들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사랑을 받았던 나일론의 처음 제품은 바로 여성용 스타킹이었지요. 실크스타킹에 비해 얇고 투명해서 바로 이때부터 여성들이 다리에 털을 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실크스타킹에 비해 두 배나 비싼 나일론 스타킹을 사기 위해 시판 첫날부터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물건은 금방 동이 나 버렸다고 합니다. 듀폰사는 이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로 다시 한번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의류뿐만 아니라 낙하산, 타이어, 밧줄, 텐트 등 제2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군수품 제조에 엄청난 양의 나일론이 소비되면서 스타킹 등의 제품 생산이 잠시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여성들은 자신의 스타킹을 벗어 군수물자 낙하산 생산에 사용해달라며 헌납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웃지 못할 해프닝이기도 합니다.


만약 캐러더스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이 개발한 합성섬유가 전쟁을 위한 군수물자로 생산되고 날개 달린 듯이 팔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순수했던 이 천재 과학자가 또다시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여러 가지 기능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합성섬유 나일론의 모습을 그가 지켜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러나 잘 썩지 않는 성질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요? 모든 발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질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쓴이 한지숙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