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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공항을 다녀오며

by 앰코인스토리 - 2017. 8. 29.


40일간이나 처제 집에서 놀다 오는 아내를 맞으러 딸과 함께 공항에 갔다. 막내동서가 안식년을 맞았다는 소식에 일사천리로 수속을 밟아서 처가 쪽 식구 일곱 명이 켄터키주 루이빌을 다녀오는 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애틀랜타를 2박 3일간씩 다녀온 것 말고는 세탁소 일을 거들면서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니, 남다른 피붙이의 정에 놀랄 뿐이다.


그사이,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사실, 혼밥을 먹기에 불편할 게 없는 세상으로 변했다는 사실, 젊은 시절에는 이틀도 혼자 있기가 싫었는데 이제는 견딜 만한 세태로 변모했다는 현실이 많이도 혼란스러웠다. 거기다가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1년이면 반 정도를 지방에 내려가서 혼밥을 먹는 동기생을 둘이나 발견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만 삼식이로 다른 세상에 살았나! 요사이 시대가 좋아진 탓인가. 그보다는 나라가 부자인 덕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어려운 시대를 몸으로 때웠지만,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


근래에 와서 우리 가족은 매년 해외를 드나든다. 올해도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었더니, 아들 가족이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괌을 다녀왔다. 여덟 살인 손자 녀석이 네 번째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도 친인척 간에 별 뉴스가 아닌 나라가 된 것이 꿈만 같다. 내가 70년대에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었는데, 그 당시엔 회사는 물론이고 동네가 떠들썩했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비행기를 탄 경험이 꽤 있는데도 여행객들을 보고 있자니 여전히 마음이 부푼다. 아웃도어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손에는 항공권을 들고 설레는 표정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끼여 어디론가 떠나기 전의 그 기분 좋은 긴장감이라니. 뭔가를 사지 않아도 즐거운 면세점 구경과 기내식에 대한 기대감은 또 어떠한가. 다녀온 곳을 TV와 신문을 통하여 반추하는 것은 또 하나의 덤이다.


가끔 길을 오가다가 공항버스를 본다. 유독 공허한 날, 마주치면 만사 제쳐 놓고 훌쩍 올라타고 싶은 충동에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럴 때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의 긴급 모객 사이트를 뒤지며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꿈꾼다. 내일이라도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사람마다 개성과 사정이 다르기에 기대를 접은 지가 오래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가야 한다면 공항밖에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일상과 일탈,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낭만의 장소이자 누군가의 생업 현장이고 최첨단 항공기술이 가동되는 현대 문명의 집결지인 공항. 이번 휴가철에도 인천공항 이용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하니, 또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하긴 굳이 어디를 가지 않아도 공항 로비에 앉아 오가는 여행객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료함을 이기지 않을까 싶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목적지에 도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경관과 마주치거나 책으로만 알고 있던 진귀한 예술품이 눈앞에 나타나면 잠자고 있던 세포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기분을 앞으로도 여러 번 만끽하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