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중학교 다니는 조카를 돌봐주기 위해 시흥으로 거처를 옮긴 지 몇 개월이 되어간다. 엄마와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몇 개월 집을 비우고 있으니 집 안 구석구석이 빈 느낌이 든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지면서 커다란 집에 사람도 적다 보니 방문만 열어도 한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지난주는 큰마음 먹고 누나네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루를 통째로 비워놓고 일찍 시흥으로 향했다. 몇 개월 만에 찾은 시흥은 변한 것은 없는데 월곶을 지나 시흥에 발을 딛는 순간, 볼에 닿는 공기가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아침부터 춥고 기온도 낮았지만 설렘과 기대감으로 인해 추위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으리라.


아침부터 서둘렀던 것은 훌쩍 자라버린 딸 같은 조카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등교 시간이 자율화되다 보니 옛날처럼 새벽에 등교하는 풍토는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전화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조카는 등교 준비에 분주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고 한 달이 다르다고 하던데,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린애 같던 조카도 이제는 코 흘리는 초등학생 티를 확 벗은 어여쁜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중1이 초등학생 연장선이라면, 중2의 겨울은 고등학생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반갑게 맞이하는 조카의 모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두 단어가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짧은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몇 개월의 텀을 까맣게 잊게 해주었다. 가방을 메고 인사를 하고 쏜살같이 현관문을 나서는 조카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집어주자 조카는 밝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미리 전화를 해서인지 엄마는 주방에서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내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조카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물어보자 엄마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늘어놓으셨다. 엄마와 함께한 밥상머리에서도 이야기보따리는 끝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 수다들이 전혀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구수한 입담이 밥맛만큼이나 달았다. 몇 달 만에 본 엄마의 모습은 흰머리가 하나둘 늘기는 했지만 마치 세월을 거스른 듯한 평안해진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뭐 좋은 거 많이 드시나 봐요? 얼굴이 전보다 더 좋아지셨네요.” 말없이 빙그레 웃으셨다. 그러면서 “난 좋은 거 안 먹는데….” 하신다. 아마도 사랑하는 조카와 누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는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추웠다. 며칠 전 신문에서는 사랑의 온도탑이 점등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바야흐로 마음도 몸도 꽁꽁 얼게 하는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올해 겨울은 얼마나 더 추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지만 사랑하는 가족, 조카, 부모님이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추위쯤은 가뿐히 이겨내고 2017년 따뜻한 새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추울수록 가족의 힘으로 서로의 손을 더욱더 꼭 잡아주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바람을 가져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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