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으나 생소한 번호라 뚜껑을 닫아버렸다. ‘솥뚜껑 보고도 놀란 가슴’이라고, 금전적으로 손실은 없었지만 보이스피싱에 두 번이나 끌려다녀서 곤혹을 치른 일이 아직도 생생해서다. 조금 있자니 “손자가 키즈폰을 선물 받아서 한 전화이니 받아주세요.”라는 아들의 문자 메시지가 떴다. “할아버지! 나 키즈폰 샀어. 그런데 30분 넘으면 안 되니까 오래 못해요.” 하고는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기분을 북돋워 주려고 “할아버지가 전화하는 것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받아라.” “그건 아는데, 공부 시간에는 하지 마세요.”라면서 언제 시간이 난다고 알려주는데도 입력이 되지 않는다.


어린이에게 휴대전화는 여러모로 좋지 않다면서 고학년이 돼야 사 줄 거라고 하더니 웬일일까? 아내는 “사부인이 학교와 학원에서 손자를 데려오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해서 서둘러 구매했다고 하네.”란다. 그 뒤로 문자를 보내면 자기 것으로는 안 되는지 애비 휴대전화로 답을 보내고, 손자 번호가 뜨면 곧바로 중단시키고 내가 전화를 거는 것이 이심전심이 되어 가끔 소통하고 있다. 수업이 없다는 일요일에 전화를 걸지만 “할아버지, 숙제 중이니 한 시간 뒤에 전화 주세요.” 하면서 끊은 것도 여러 번이다. 괜히 내 기분 좋으라고 녀석에게 방해만 하는 늙은이인 것 같아 무척이나 미안하다.


지난 금요일에는 전시회 가는 길에 손자가 다니는 학교를 구경하려고 그 동네의 전철역에서 내렸다. 전철역 출입구가 아파트이기에 ‘다음지도’에서 확인한 코스로 걸었더니 5분 정도 걸렸다. 철문에는 ‘명문○○’이라고 크게 각인되어 있었다. 정문에서 바라보니 정면과 좌측으로 건물 두 개가 배치되었고 운동장은 인조잔디가 깔렸으며 공부시간이라 누구 하나 보이지는 않았다. 내 나이의 수위에게 “손자가 1학년 5반인데 어느 건물입니까?” 했더니 좌측 건물의 2층 중간쯤이라고 알려주신다. 나는 수첩을 꺼내서 골대 4개까지 포함한 약도를 그렸고, 집에 와서는 좀 더 상세하게 ‘내 손자 다니는 길’이라며 아파트에서 교실까지 예상되는 경로를 화살표로 표시해서 아들에게 보내주었더니 녀석이 “할아버지, 짱이야!”라고 소리 지르며 엄청 좋아하더라고 전한다.


그저께는 아내가 “요사이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손자 또래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딱지치기를 하네. 손자는 10장을 가지고 있지만 잃을까 걱정되어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못한데.”라고 한다. “그런 일로 애가 기죽으면 되나. 내가 더 사주면 되겠네.” 인터넷을 통해 플라스틱으로 된 대왕딱지를 주문했다.

“○○야, 할아버지가 왕 딱지를 샀다. 내 딱지를 따서 친구들하고 붙어 보아라. 원한다면 100장이라도 사 줄 테니 잃을 것 두려워하지 말고 겨루어 보는 거야!” “할아버지, 나도 다 알아. 친구하고 겨루어서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체력은 떨어지고 순발력은 둔해지고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난 노인에겐 손자의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더 바랄 게 없는 비타민이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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