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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역사 속 엔지니어] 우연한 호기심이 주방의 혁신을 일으키다, 마이크로오븐 발명가 퍼시 스펜서

by 앰코인스토리 - 2016. 11. 8.


[역사 속 엔지니어] 마이크로오븐 발명가 퍼시 스펜서


아직 쌀쌀함이 가시지 않은 1947년 이른 봄, 미국 보스턴의 한 레스토랑 앞에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 붙은 안내 표지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지요.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레스토랑에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마치 마술과 같은 방법으로 음식을 요리하여 손님 여러분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꽃이 없는 전열 기구 즉,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멋진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이크로웨이브오븐(microwave oven, 일명 마이크로오븐 혹은 전자레인지) 사용의 최초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 사람들에게 불꽃이나 발열판 없이 조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이런 물건을 처음 생각해 내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우연한 사건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듯, 인류에 큰 공헌한 발명품이나 발견 또한 우연한 것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퍼시 스펜서(Percy Spencer, 1894~1970)가 발명한 마이크로오븐이 아닐까 합니다.


▲ 퍼시 스펜서의 모습

사진출처 : https://goo.gl/IhmmGm


퍼시 스펜서는 1894년 미국 메인 주, 하울랜드(Howland)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일찌감치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였습니다. 전기에 대한 지식이 희박했던 시골 마을에서 동네 제지공장 전기 설치에 우연히 지원하게 되었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독학한 결과, 나름 숙련된 전기 기사로 성장합니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에는 미국 해군에 지원하는데요, 이때 선배로부터 타이타닉 배가 침몰할 때 그 배에 승선했던 한 무선 통신사의 활약상을 전해 듣고 크게 감명하여, 무선통신 기술에 대해 흥미를 갖고 공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삼각함수, 대수학, 화학 물리, 금속공학 등을 독학하여 무선통신은 물론 전기, 전자파 등의 지식을 섭렵하였습니다.


▲ 미군 수뇌부 앞에서 마이크로파 장비를 소개하는 퍼시 스펜서

사진출처 : https://goo.gl/oDyr9V


1939년, 45세가 된 스펜서는 레이더 튜브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는 미 국방부 군납업체인 레이시언(Raytheon)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의 명성과 실력 덕분으로 전투용 레이더 장비를 개발하는 정부의 입찰을 따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 장치 개발과 사용은 전쟁의 양상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레이더의 핵심기술인 마이크로파 신호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마그네트론이 사용되었는데, 17개의 마그네트론을 생산하던 레이시온 사가 스펜서의 연구로 하루에 무려 2,600개의 마그네트론을 생산할 수 있는 고성능 기술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스펜서가 고안한 이 레이더는 성능이 우수하여 물속의 독일 잠수함 잠망경을 감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주요 부품인 마그네트론

사진출처 : https://goo.gl/Me3eXL


그런데 언제, 어떻게 마이크로오븐이 탄생하게 된 걸까요? 어느 날, 스펜서는 여느 때처럼 그의 작업실에서 레이더용 마이크로파 발생 장치인 마그네트론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진 스펜서는 주머니에 넣어둔 초콜릿 바를 먹으려고 꺼냈는데, 초콜릿 바가 다 녹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무심히 넘어갔다면 오늘날의 전자레인지는 적어도 몇십 년 뒤에나 만나 볼 수 있었겠지요. 스펜서는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여기고 말린 옥수수를 마이크로파에 노출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옥수수 알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며 팝콘으로 튀겨져 나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웨이브 팝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실험으로 찻주전자 속에 달걀을 넣고 마그네트론을 작동시켰습니다. 달걀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터져버렸는데요, 이런 여러 실험을 통해 마이크로파가 음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그의 호기심을 사실로 증명해내었지요.


▲ 세계 최초의 전자레인지인 레이더레인지

사진출처 : https://goo.gl/Q2uTtc


실험에서 확신을 얻은 스펜서는 곧장, 고밀도 마이크로파 발생장치를 붙인 금속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금속상자 안의 마이크로파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완전히 차단하여 1945년 10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오븐 특허를 신청합니다. 최초의 상업적 마이크로오븐은 자그마치 높이가 167cm, 무게가 340kg, 가격도 일반 가정의 1년 치 월급과 맞먹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 1961년 원자력 선박 NS Savannah에 설치된 레이시온 사의 레이더레인지

사진출처 : https://goo.gl/y3XiOs


스펜서는 공로를 인정받아 레이시온 사의 수석부사장이 되었으며, 그가 있는 동안 레이시온 사는 300여 개가 넘는 특허를 따냈습니다. 또한, 그는 매사추세츠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초등학교 중퇴 학력은 그에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인류에게 있어서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가 ‘불의 사용’이라고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불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데우고 조리할 수 있게 된 도구의 발명은 또 다른 획기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연을 우연으로만 치부해버리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탐구했던 한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역사 속의 그 한 사람,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글쓴이 한지숙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