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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고향을 먹고 컸잖아

by 앰코인스토리 - 2016. 9. 16.


이번 달 초순에 친정아버지 팔순을 맞아 고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열 살 때까지 살았던(지금의 친정에서 산골짜기로 6km 더 들어간 오지) 곳이 어떤가 하는 호기심에 남편과 함께 디지털카메라까지 챙겨서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서 있던 느티나무와 정자, 겨울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썰매를 탔던 연못, 아침마다 가장 먼저 가본 연못 옆의 호두나무,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던 우리 집과 엿장수가 올 때마다 진을 치던 집 앞의 넓은 공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60년이 넘은 기와집도 그대로였고, 느티나무도 온전하게 서 있었다. 물론 연못과 호두나무도 50년의 세월에도 꿋꿋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작아 보였던 것이다. 마을에서 가장 컸던 우리 집은 6칸짜리의 마당 좁은 집이었고, 집 앞의 넓은 공터는 자동차 한 대를 돌리기에도 벅찼다. 연못은 붕어 몇 마리가 노닐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꽉 찬 좁은 웅덩이 같았다. 50년의 세월을 지낸 느티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내 팔로 두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둘리는 것을 보니 그동안 더 작아진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페교된 지 오래였다.


150여 호가 사는 우리 마을에서 읍내 여중에 다니는 동급생은 다섯 명이었다. 동네 앞 정자나무 밑에서 만나 10여 리나 되는 학교를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공유한 친구들이다. 계절 따라 오디 먹고 메뚜기도 잡았으며, 수수를 까먹으면서 오가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남학생을 만나면 그날의 구세주가 되었다. 대다수가 무거운 가방을 싣고서 우리와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가지만, 누군가는 도망을 쳐서 별별 것이 다 들어있는 가방을 뒤진 일도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통지표까지 들어있었으니 그 황당함이란. 그런데 그 넓게만 보였던 운동장엔 잡초만 무성했고,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이상해. 모든 것이 너무 작아져 버렸어.’ 50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나는 많이도 실망했다. 남편에게는,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임에도 동심에 젖는 내 모습이 어느 때보다 해말갛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의 상실감을 느꼈는지, 남편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당신이 고향을 먹고 컸잖아.”라고 말해주었다.


열 살 때 떠난 이곳은 가끔 꿈속에서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향을 조금씩 먹고 자랐고, 고향은 조금씩 줄어들었던 모양이다. 요즘엔 우리가 찍어온 고향의 모든 정경을 집에서 본다. 그러면서 고향이 넘겨주는 따뜻함으로 조금씩 마음을 키우고 있다. 좀 더 관대하고, 좀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화면 속 고향은 더는 줄어들지 않는 마력을 발휘하여 오늘도 우리 마음을 키워주고 있다.


글 / 사외독자 이미정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