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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문화로 배우다

[테마 피플] 헬렌 켈러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by 앰코인스토리.. 2014. 6. 19.

어느 교과서나 위인전에도 빠지지 않는 인물을 한 명 꼽으라면 헬렌 켈러를 들 수 있다. 헬렌 켈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시각과 청각장애를 극복한 여성이라는 점과 설리번 선생에게 말을 배운 일화들이 희미하게 기억날 것이다. 여기서는 좋은 동반자들과 인생을 보냈던 사람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활동가로서 헬렌 켈러의 또 다른 모습을 소개한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1968년)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에 시달렸던 장애인 여성이다. 우리가 아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설리번 선생을 만나 글을 배우는 데서 시작해 래드클리프 대학을 입학하는 데서 끝난다. 래드클리프 대학은 하버드 대학이 남학생만 받던 시절에 보완적 역할을 했던 여학교였기에, 어떤 어린이용 위인전에서는 아예 하버드대학교라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 위인은 성인기의 업적에 따라 위인으로 불린다. 어린 시절에 천재였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위인으로 칭송받는 사람은 없다. 헬렌 켈러는 ‘미수(米壽)’라고 하는 88세까지 살다 갔다. 60년이 넘는 그녀의 진짜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시선이나 학벌 중심 사회의 편견도 버려두고, 우리가 몰랐던 헬렌 켈러의 인생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인형을 손바닥으로 느끼다


ⓒ New England Historic Genealogical Society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서 H. 켈러(Arthur H. Keller), 어머니는 케이트 애덤스 켈러(Kate Adams Keller)였다. 켈러 부부가 아이를 낳았을 때, 헬렌은 평범한 아기였다. 그러나 생후 19개월째에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뇌와 위에 급성 출혈이 일어났다. 잠깐 스쳐 지나간 병이었지만 이때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다. 그녀는 다행히 한집에 사는 요리사의 딸 마르타 워싱턴과 어울리며 자랐다. 마르타가 수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덕에 일곱 살 무렵에는 수십 가지의 수화를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마르타와의 소통이 헬렌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켈러 부부는 딸의 장애를 알고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 교육에 관한 책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녔다. 장애는 고칠 수 없지만 그것을 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교육하기로 결정한다. 수소문 끝에 펄킨스 시각장애학교를 졸업한 앤 설리번(Anne Sullivan,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년~1936년)을 가정교사로 받아들인다. 스무 살의 설리번 선생이 일곱 살의 헬렌을 만났고 둘은 50년 가까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설리번 선생은 인형을 선물하고 헬렌 손바닥에 인형이라는 뜻의 철자 ‘doll’을 적는 것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주변 사물들의 흐릿한 윤곽을 더듬으며 철자를 하나하나 손바닥으로 배웠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여기까지가 흔히 아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영화 <미라클 워커(The Miracle Worker)>의 인기가 큰 몫을 했다. 헬렌은 대학 시절인 1903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썼다. 이것을 바탕으로 1959년 연극 <미라클 워커>(1959)가 나왔고, 그녀의 사후에는 이 연극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가 1979년 상영된다. 영화는 TV용으로 다시 만들어져 1979년과 2000년에 방영되었다. TV영화는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이따금 틀어주곤 한다.


동반자들의 헌신적인 조력


설리번 선생의 끈질긴 노력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마치 헬렌 켈러가 집에서만 교육받은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쉼 없이 정규교육을 받았다. 1888년 만 여덟 살이 되자 설리번이 다녔던 펄킨스 시각장애학교에 등록했고, 6년 후인 1894년에는 라이트 휴머슨 청각장애학교와 호레스 만 청각장애학교가 있는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 후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거쳐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다닌 것이다. 래드클리프를 졸업할 때 영어, 독일어를 포함해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설리번은 헬렌과 늘 동행했고, 교사로서가 아니라 동료로 남았다. 설리번의 남편 존 메이시까지 세 사람은 시각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죽는 날까지 함께 활동했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1914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설리번 선생은 1936년에 사망했다. 1914년부터 헬렌의 곁을 지킨 사람은 폴리 톰슨이었다. 처음에 톰슨은 집에서 그녀를 돌보는 역할로 고용되었으나 점차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마침내 헬렌의 비서가 된다. 40년 가까이 그녀의 곁을 지켰고, 설리번 선생 이상으로 헬렌 켈러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1957년 톰슨이 발작으로 몸져눕자 헬렌은 위니 코베리라는 간호사를 고용했다. 톰슨을 돌보기 위한 일이었지만 1960년 톰슨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코베리는 계속 남아 그녀를 돌봤다. 헬렌의 마지막 10여 년은 코베리가 함께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 장애인과 함께한 인권운동가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 켈러의 인생 초반 20여 년보다 60여 년의 중후반이 거의 가려져 있던 이유는, 그녀의 직업이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이다.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입은 미국 사회의 억압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어떤 이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헬렌은 전 세계를 다니며 민주주의, 여성주의, 사회주의를 설파하고 실천했다. 또한, 열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훌륭한 연설가이기도 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3년 후, 미국은 뒤늦은 참전을 선언한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우자 헬렌 켈러는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야말로 평생을 여성의 선거권과 참정권, 노동 인권, 반전과 평화, 사형제 폐지, 인종차별 철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의 사회운동은 전쟁을 옹호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표적인 비난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때 배후 조종자가 있을 것이라 매도하는 경향은, 1900년대의 미국도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체적 장애보다 사회의 장애를 극복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였던 헬렌 켈러. 헬렌은 1968년 정말로 눈을 감는다. 1961년부터 뇌졸중을 앓았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미국 시각장애인재단을 위해 일하고 떠났다. 헬렌 켈러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앤 설리번과 폴리 톰슨 옆에 묻혔다. 그리고 눈 없이도 세상을 똑바로 보았고 청력이 사라져도 타인의 신음을 들을 줄 알았던 위대한 정신의 표본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것들은 가슴으로 느껴야만 한다.”
“혼자서는 약간의 일을 할 수 있다. 함께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친구와 걷는 것이 환할 때 혼자 걷는 것보다 낫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는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김희연은 _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사회, 문화, 경제 분야에 두루 걸쳐 갖가지 종류의 글을 쓴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품은 한편으로, 쓸데없는 글로 인해 웹이나 인쇄매체에 들어가는 종이와 바이트, 그리고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