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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여행기] 대만여행의 아쉬움과 정(情)

by 앰코인스토리 - 2016. 6. 3.

‘젊은 시절에 서유럽과 미 서부지역은 꼭 다녀오너라. 유럽에서는 인류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고 서부에서는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알게 되리라.’며 자식과 조카들에게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내 경험을 들려주곤 했다. 집콕하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가장 재미있게 보는 TV프로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세계 테마 기행’이다. 여행했던 곳을 방영할 때는 뿌듯함에 빠져들면서 빛바랜 사진첩을 뒤지고 여행 후기를 읽으며 즐거움을 보탠다.


이번에는 발칸지역의 빨간 지붕과 푸르디푸른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고성을 보고 있자니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가슴이 설레어서 여행사를 찾았다. 직원에게 프라하(Praha)와 찰스부르크(Salzburg)를 포함한 발칸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8박 9일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금액보다 50만 원이 저렴한 직항 편을 제시한다. 최소 출발인원에 2명이 부족한 땡처리 상품이지만, 웬 떡이냐며 두말 않고 가계약을 한 흥분을 채 삭이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여행 안내서를 내밀었다. 하루 동안 가타부타 언급은 없지만, 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같더니 “나이가 몇인데 열두 시간 비행에 다섯 시간을 이동하면 허리가 버텨나겠어? 갈려면 혼자나 가셔.” 라고 한다.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읽었더니 버스로 다섯 시간에서 다섯 시간 반을 이동하는 구간이 세 곳이나 되는지라 아쉬움만 남긴 채 포기했다. 그렇지만, 출국 수속만 밟고 나면 잡념이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쁨을 잊지 못해서 제주도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만을 선택하고 나들이 기분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마주치는 아파트의 외벽이 거무칙칙하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씨에다 이른 출발에 영화촬영지라는 상가도 문을 열지 않아 우울했지만, 예루 지질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쳐서 바닷속에 있던 바위와 암석들이 긴긴 세월을 거치면서 해면 위로 솟아오른 갖가지 형태의 만물상들이 다소나마 기분을 풀어주었다. 터키와 여기가 유일하다지만, 자연의 창조적 조형미를 보여준 카파도키아의 기암과는 규모나 형태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만 제1경인 태로각 협곡을 오가는 무궁화급 열차는 현대에서 1987년에 제작한 것인데도 외관이나 내부가 새것 같고 편안했다. 웅장함과 동식물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라지만 서부 3대 캐니언에서 마주친 감동에 비하면 빈약했다. 그러나 6.25사변 때 중공군과 맞서겠다며 30만 대군을 집결시켰다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서러움을 아슬아슬한 절벽에다 172킬로에 걸친 길을 냈다는 설명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경상남북도 크기의 땅에도 무한한 지하자원과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 2만 명의 한국 관광객을 매달 오게 한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60세 이상의 모든 부부에게 준다는 다양한 복지정책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 색다른 경험을 했다.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층 건물의 89층 전망대까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는 승강기에 오르내리니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해서 간신히 아내 팔에 매달렸다가 빈 의자에 한참을 눕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받은 쇼크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황산의 낭떠러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노익장을 과시한 일 년 전의 호기는 어딜 가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빈말이 되고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나서 아쉬움만 더해간다.


귀국 날에는 여유가 많아서 아침을 먹자마자 호텔 인근을 한 시간가량 배회했다. 특산물 판매점에 들러 선물도 사고 청과물가게도 두리번거리다가 첫날 접한 발 마사지가 뒷목까지 시원하게 했다는 마누라의 감탄사를 기억하며 마사지가게의 문을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았다. 휴지와 꽁초를 줍고 불법스티커를 제거하는 오토바이 탄 아가씨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영어로 대화가 되질 않아 손짓으로 대신했더니 휴대전화에 오픈시간을 찍어준다. 그 뒤로 패밀리마트와 우체국을 둘러보며 사거리 구석구석을 휘젓고 있자니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이쪽저쪽을 손짓하는 걸로 봐서는 20분을 찾아 헤맸다는 표시로 이해했다. 다행히도 전화통화가 되었다며 내민 휴대전화 창에는 ‘11:00~02:00’가 찍혀있었다. “땡큐!”라고 인사한 후에도 이방인에게 비친 내심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