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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엔지니어] 최무선, 불꽃을 쏘아 올린 우리나라 최초 화약 발명가

by 앰코인스토리 - 2016. 5. 10.


[역사 속 엔지니어] 최무선, 불꽃을 쏘아 올린 우리나라 최초 화약 발명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푸릇푸릇 초록색으로 뒤덮여가는 자연을 보며 자꾸만 들로 산으로 놀러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때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5월은 어버이날,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인만큼 시간을 내어 가족과 나들이 계획을 세우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자녀들과 함께 한 번쯤 찾아볼 만한 좋은 곳이 있습니다. 경북 영천시에 있는 ‘최무선 과학관’이 그곳입니다. 


▲ 최무선 장군(崔茂宣, 1326~1395)

사진출처 : https://goo.gl/i8v6WN


사진출처 : http://goo.gl/UTdqy0


최무선 장군(崔茂宣, 1326~1395)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발명하여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당시 노략질을 일삼던 홍건적과 왜구를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이를 기념하고 그의 발명가적 실험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영천시에서는 해마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물리, 생명과학, 화학 등의 과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영화 <신기전> 스틸컷

사진출처 : http://goo.gl/Ik2VkW


어린 시절의 최무선은 당시 출세의 지름길인 유학공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과학과 기술에 관련된 책 읽기에 파묻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엉뚱하게 중국어를 독학하기도 했는데 훗날 화약의 제조방법을 알아내는데 이것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요.


우리가 알다시피 화약은 나침반, 종이, 인쇄술과 함께 중국의 4대 발명품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국에서의 화약 발명 시기는 대략 7~8세기경으로,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불로장생약을 만들려다 실수로 화약이 발명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화약을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당시 고려에서는 원나라에서 사 온 화약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화약제조법을 비밀에 부쳐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값을 쳐주어도 대량으로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초파일이나 축제 불꽃놀이에나 조금씩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었지요. 그러던 중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왜구의 노략질과 이를 해결하지 못하여 골머리를 썩고 있는 조정을 보며 최무선은 이를 물리칠 묘안으로 화약을 떠올렸습니다. 화약을 이용하여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었지요.


▲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로 왜구와 싸워 이긴 진포대첩 (진포해전)

사진출처 : https://goo.gl/SO3z2a


일찌감치 무기제조 관련 서적을 두루 섭렵해온 그였지만 화약 개발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화약 제조의 핵심 기술인 염초 제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저것을 섞어가며 수 년 동안 시도해보았지만 실험은 계속된 실패로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중국 상선이 많이 드나드는 벽란도에서 혹시 염초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는 중국인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그의 이런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염초 만드는 기술을 조금 알고 있었던 ‘이원’이라는 중국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예상대로 그는 그 기술을 쉽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무선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지극정성으로 접대하며 능숙한 중국어로 그를 설득하며 끈질기게 부탁하였습니다. 그의 애국심에 감동한 이원은 결국 염초제조방법을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아궁이 속의 흙이나 담벼락 밑의 흙 중에서 맛이 짜거나 시거나 단 맛이 나는 흙을 사용해야 한다. 이 흙에 오줌과 재를 섞는다. 이것을 말똥으로 덮고 마르기를 기다린 다음에 거기에 불을 붙여 태운 다음 4~5개월 둔다. 이것을 세 번 정도 끓여서 식히면 염초가 나올 것이다.’ 


▲ 영화 <신기전> 스틸컷

사진출처 : http://goo.gl/Ik2VkW


화약제조에 마침내 성공하게 된 최무선은 반대세력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여세를 몰아 화약무기 전담기관인 ‘화통도감(火筒都監, 1377 우왕3년)’을 신설하게 됩니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그가 만든 무기의 종류는 화석포, 화포, 철령전, 피령전, 질려포, 철탄자, 유화, 주화 등 각종 총포류와 화기들로 다양한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세계 최초의 로켓 원리의 무기는 1232년 금나라의 ‘비화창’이고 두 번째는 아라비아에서, 세 번째는 이탈리아의 ‘로켓타’, 그리고 세계 네 번째가 바로 최무선의 ‘주화’라고 합니다. 이것은 훗날 다연발 로켓무기라고 할 수 있는 ‘신기전’으로 발전되지요.


▲ 영화 <신기전> 스틸컷

사진출처 : http://goo.gl/Ik2VkW


화포, 화전 등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무기를 이용하여 1380년 또다시 침범한 왜구의 배 수백여 척을 거의 전멸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화약병기의 우수성을 입증한 계기였지요. 그러나 실권을 장악한 세력은 반대파의 손에 화약무기가 들어갈까 두려워 1389년 화통도감을 폐지하고 화약무기 개발도 거의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이권에 눈이 먼 자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다행히 태종1년, 최무선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 후손이 벼슬을 받게 되었고, 최무선이 남긴 ‘화약수련법’을 통해 그 기술이 전수되어 경희고소총통, 철신포, 그리고 임진왜란 때 사용한 비격진천뢰 등으로 기술이 한층 발전된 화약무기를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 경희고소총통, 비격진천뢰와 단면도

사진출처 : (위) http://goo.gl/HT93FF 

(아래) http://goo.gl/bTWWZ4 / http://goo.gl/P2rHMO


작은 아이디어에서부터 큰 발명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 역사 속 엔지니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아마도 어려움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이었기에 어려웠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때론 비난도 감수해야 했지만, 역사 속의 그들은 자기 일에 열정을 갖고 소신 있게 가야 할 길을 걸어갔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에 어떤 역사 속의 인물로 남게 될까요?


▲ 영화 <신기전> 스틸컷

사진출처 : http://goo.gl/Ik2VkW




글쓴이 한지숙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