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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윷놀이

by 앰코인스토리 - 2016. 4. 14.


부모님이 계셨을 때 삼대가 다 모이면 22명이었다. 가족행사가 끝나면 끼리끼리 둘러앉아 왁자지껄 놀이판을 벌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그런 놀이가 없어 늘 심심했다. 기껏해야 술잔이나 기울이다가 각자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는, 신변잡기에는 끼도 관심도 적은 편이었다. 그런 관습이 내 대에 와서도 반복되어, 행사가 끝나기 바쁘게 뿔뿔이 헤어지는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 안타깝고 섭섭했다. 다행히 작년에 가족으로 들어온 사위는 붙임성이 좋은 데다가 사교성도 있어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드럼동아리를 등록했다고 한다. 결혼식 뒤풀이 때는 후배들과 연주를 하여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고 하나, 처가에 와서는 그런 끼를 아직은 발휘하지 않는다.


흔한 게 놀이판이라지만 우리 부부는 물론 자식들도 무관심한지라 궁여지책으로 윷놀이를 염두에 두어 왔으나 손녀가 어려서 미루고 있었다. 손자가 누군가와 게임을 하는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손으로 휘저어 방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게임을 해도 지켜만 보는지라 윷놀이로 가족 우애를 다질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말 두 동을 먼저 내는 팀이 승자이며 판이 끝날 때마다 차 기름값으로 챙겨놓은 약소한 상금 한 장씩을 가지도록 하고, 순서를 정하기 위하여 가위바위보를 했다.


우리 부부, 딸 부부, 아들 가족, 4명의 순서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세 판까지는 평상심으로 별다른 의의 없이 진행되었다. 다섯 판이 끝났는데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딸의 항의가 들어왔다. 동갑인 사위를 보며 “우린 아직도 빈손이야. 말 좀 잘 써봐. 세하는 서서 하니까 윷이 자꾸 나오고 언니는 굴리면 안 되잖아요.” 의견을 나눈 끝에 어린이는 어떤 형태로 던져도 봐주지만, 며느리가 굴리는 것은 규칙에 어긋남으로 자제하도록 했다. 횟수가 거듭되면서, 잡고 잡히고 도망가면서, 웃음과 한숨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두 손으로 윷가락을 움켜쥐고서 아래로 던져도 연거푸 윷을 만드는 손녀의 솜씨가 신기했고, 백도를 직접 그려 넣은 사위 팀은 도를 세 번이나 하는 바람에 쉽게 한 판을 이겨서 환호성이 울렸다.


게임이 끝나니 첫 게임을 한 순서대로 4대3대3이었다. 상금을 댄 우리 팀이 욕심 없이 계속 두 동을 동무하도록 한 결과지만, 조금 더 즐기자는 생각으로 다시금 상금을 걸었다. 짧은 휴식에도 팀마다 작전구상에 열심이다. 말을 쓰는 방법과 윷과 모를 만드는 기술(?)을 의논하는 것 같다. 네 판을 더하면서 보니, 싫증을 느낀 손녀가 빠지고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데다가 골인 지점의 말을 딸에게 잡힌 며느리는 아들에게 “내가 쓰라고 하는 대로 (말을) 썼으면 이겼잖아요.”라며 열을 올렸다. 손자도 안달이 나서 “세하야, 우리 윷놀이 같이하자.”고 꾀지만, 이미 흥미를 잃고 장난감 놀이에 빠진 손녀는 옆에 와서도 무관심이다.


마지막 스코어는 2대3대5. 꼴찌던 딸 팀이 드디어 1등을 했다. 보고 싶은 손주를 두 시간이나 더 잡아두었으니 기획전 또한 성공이었다. 한 시간 반이 넘어가니 재미가 반감되는 낌새라, 다음부터는 한판을 세 동으로 올려서 10판으로 줄일 예정이다. 경쟁심을 더 부추겨서 자식들의 개성도 즐길 겸 “다음번에는 기름값을 두둑이 묻어야겠다.”고 했더니 아내와 딸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안 돼. 누구 싸움 붙일 일 있어?”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