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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원래 이렇게 잘 보였어?

by 앰코인스토리 - 2016. 4. 7.


손자가 작년부터 가끔 눈을 찡그리더니,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안경을 맞춘 모양이다.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3대의 남자가 안경을 쓰게 된 것이 나로 인한 것 같아서 속이 아린데, 어린 나이에 안경을 끼고 밖에 나와서 했다는 첫 마디가 “원래 이렇게 잘 보였어?”라는 전언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해서 이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비율이 초등학생은 30% 정도고 중고등학생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지라도 60명이 넘는 한 반에 안경 쓴 동기가 3~4명에 불과했던 1960년대. 안경으로 인하여 내가 겪은 고초를 되새기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 독성을 띤 구름처럼 주위를 맴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2.0의 시력을 유지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언덕에 있는 단층의 임시교사에서 키 순서로 배정받은 37번의 자리는 창문 옆이었다. 오후가 되면 햇살이 강해서 책을 보다가 칠판을 보려면 글씨가 어슴푸레 보이는 날이 늘어만 갔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는 생각조차 못 하고 창문에 종이를 부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서 강한 직사광선을 고스란히 눈으로 받아내야 했다. 게다가 집에 가면 좁아터진 방에 큰방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희미한 30촉짜리 전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의 칠판글자가 보일락말락하여 짝꿍의 노트를 보면서 필기를 하고 있는데, 영어 선생님이 칠판에 쓰인 글을 해석하라고 지명했다. 안 보인다고는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불호령이 나고서야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은 0.7. 지금 같으면 콘택트렌즈를 낄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평생 안면에 안경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타민을 상용하고 아침마다 날계란을 두 알씩 먹는 것이 고작. 당시 일기장을 보면 안경으로 인한 불편함과 불안감으로 도배되어있다. 불편한 점을 30가지 이상이나 나열하고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도수를 올리다가는 머지않아 실명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적혀있다.


안경을 착용한 후, 처음으로 고향에 가서 만난 어른들께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드리니, 어느 분은 못 본 척 얼굴을 돌리셨고, 한 분은 “고얀 놈!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컬러TV는 고사하고 흑백TV도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눈이 나빠질 요인은 적었으며 안경을 착용한 사람 역시 극소수였다. 평생 도시라곤 가본 적이 없는 시골노인 처지에선 학생이란 녀석이 안경을 쓴다는 것은 ‘공부는 뒷전이고 시건방진 탓’이라고 오해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소경이 될까 봐 고심했던 것은 어느 정도 시력이 저하되다가 40대에 고정되는 바람에 기우에 그쳤고, 다른 친구들보다는 노안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외관상으로 보기가 싫으면 콘택트렌즈를 낄 수도 있고 성인이 되면 라식수술도 가능한데 왜 사서 가슴앓이하냐며 아내가 핀잔을 준다.


“손자 데리고 가거든 안경에 대해서는 모른 척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어린이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오로지 부모 잘못이다. 손자에게 좀 더 신경을 쓰고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안과에서 검안을 받을 것이며, 눈에 좋다는 비타민을 꾸준히 복용시키라.”고 충고하며 불안감을 달래보지만, 자꾸만 일기장이 떠올라 심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