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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리와 친해지기

[와인과 친해지기] 클라우디 베이, 테코코 (뉴질랜드, 화이트와인)

by 미스터 반 2016. 2. 29.

사진출처 : http://goo.gl/CsdRlU


필자가 더운 나라 필리핀에서 생활하다 보니 레드와인보다는 시원하게 칠링해서 마시는 화이트와인 품종을 자주 찾게 된다. 특히, 소비뇽블랑 품종은 상큼한 풀 내음과 열대과일 향이 어우러져 부담 없이 마시기엔 참 좋은 와인이다. 하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와인 초보자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다.


소비뇽블랑에 관심을 두고 있는 애호가에게 뉴질랜드 대표 와인을 꼽으라면 단연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를 꼽을 것이다. 또한 테코코(Te KoKo)라는 이름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클라우디 베이는 뉴질랜드, 말보로(Marlborough) 지역의 와인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와이너리고, Te KoKo는 클라우디 베이에서 만든 최고의 와인이다. Te KoKo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도전정신에 있다. 소비뇽블랑 품종은 대부분 스테인리스 통에 숙성되어 깔끔한 맛을 주로 부각하지만, Te KoKo는 소비뇽블랑을 오크통에서 숙성되어 부드럽고 품위있는 와인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Te KoKo, 참 특이한 와인 이름으로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그런 이름이다. 혹시 일본사람이 뉴질랜드 와인에 지대한 공헌을 해서 일본식으로 지었을까 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Te KoKo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1770년 캡틴 쿡이 클라우디 베이로 이름을 지은 후로 계속 사용되다가 2014년 8월에 테코코 쿠페(Te KoKo-o-Kupe)가 공식 지명이 되었는데, 이는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 언어로 클라우디 베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며 그 지역에서 굴(Oyster)를 발견하고 수확한 초기 탐험가 Te KoKo-o-Kupe 를 기리기 위해서 붙여졌던 지명이라고 한다.


참고로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는 뉴질랜드 남섬 최북단에 있는 말보로 남쪽 지역 지명인데 와인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클라우디 베이의 첫 상업적 빈티지는 1985년에 출시되었는데 이는 뉴질랜드가 처음으로 세계 전 지역에 수출한 와인 중 하나이며 과일 지향적인 스타일과 확연한 특징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후 클라우디 베이는 2003년 세계적인 그룹인 LVMH(Louis Vuitton Möet Hennessy)에 의해서 인수되었고 호주, 영국,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 2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었을 때 클라우디 베이는 여러 번 만났었으나 테코코는 보지 못했었다. 와인 마니아들 블로그에서 어쩌다가 등장하는 와인이기도 했는데, 백화점이나 마트 와인코너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리핀에서도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테코코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주, 오랜만에 떠난 홍콩 가족여행 중에 드디어 테코코를 만났다. 숙소 근처 쇼핑몰을 돌다가 와인가게를 발견했는데 선반 한쪽에 테코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와인 가격은 착하지 않았지만 놓칠 수 없어서 바로 구매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횟집에 들러 회 세트를 준비했다. 주로 연어였지만 조개관자와 방어로 보이는 회도 섞여 있었다.



호텔 룸서비스에 와인잔도 2개 부탁하고 와인도 적당히 칠링시켜서 회와 함께 먹었는데 정말 훌륭했다. 와인색은 샤도네이처럼 약간 노란색을 띠었으며, 살짝 치고 올라오는 복숭아 향기와 함께 열대과일의 향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보통 소비뇽블랑처럼 맑고 상큼하기보다는 오크 숙성을 통해 전해지는 절제된 묵직함이 오일리한 연어회와도 잘 어울렸으며, 다른 회와도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보여주었다.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이 발릴한 사춘기 소녀라면, Te KoKo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소녀의 발랄한 모습이 순간순간 엿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늘상 접해왔던 문화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깨닫듯, 테코코를 체험하며 내가 알고 있었던 소비뇽블랑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여행 중에 다양한 음식문화를 체험하면서 혹시 테코코를 발견한다면 꼭 한번 회와 함께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새롭고 즐거운 여행 속에 빛나는 작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마치 이번 여행 때 보았던 홍콩 빅토리아 피크의 야경처럼 말이다.






WRITTEN BY 정형근

우연히 만난 프랑스 그랑크뤼 와인 한 잔으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주위에 와인 애호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보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와인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와인을 신중히 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