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여러 해 동안 아파트 통장 일을 보고 있다.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확인받는 통지서와 고지서가 여러 종류지만, 가족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유일하다고 한다. 아들로부터 손자의 취학을 알리는 통지서를 메일로 받았다. 내가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은 망각하고 손자가 이만큼 자랐다는 게 대견하고도 뿌듯하다.

2016년 3월 2일 11시에 모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있음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교육 1번지이고 학원 수가 가장 많은 데다가 고액과외까지 성행하는 지역이라 기쁨 반, 우려가 반이다. 손자의 장래는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지만 우린 양쪽 모두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만 하여도 동네 교육여건이 열악하여 며느리 직장이 있는 여의도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고 전해 듣고 내심으로는 목동 쪽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사돈네가 강남구 신축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갈등이 생겼다. 손자손녀를 돌보아줄 사부인을 따르자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고, 입주 도우미를 두거나 맞벌이를 그만둘 처지도 못 되어 아들이 육아휴직을 고려한다고 해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키듯 집안 망신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민 끝에 사돈네 근방의 노후아파트를 전월세로 들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손자는 그렇다고 치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손녀는 더욱 난감한가 보다. 일반 유치원 설명회에 다니면서 여러 곳에 원서를 낸 며느리는 “경쟁률이 10대 1 이상이라 탈락이라도 하면 정부지원이 되지 않아 비용이 한 달에 3배 가까이 비싼 사설놀이학교 쪽을 알아봐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격세지감이지만 어렴풋이 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취학통지서 비슷한 게 있었겠지만 옆집 아이 따라 일찍 들어가기도 하고 2~3년 늦어도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문제 삼지 않았다. 동네에서 형, 누나로 부르던 언니가 예고도 없이 들어왔다가 월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 4월-그 당시는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인데도 운동장 한편에 칠판을 걸어놓고 40여 명이 선생님의 꽁무니만 쳐다보면서 가갸~그기를 따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의 뒷주머니에 삐죽이 나와 있던 막대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는데, 그 재미로 학교에 오는 또래도 여럿이었다. 국민소득 천 불이 안 되던 가난했던 때였지만, 선행학습이나 과외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으므로 그런대로 행복했다.


국민소득 5천 불 미만인 때에도 외벌이로 자식 두 명 키우고 공부시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건만, 3만 불을 눈앞에 둔 지금은 최고학부 나와서 맞벌이를 해도 비정규직에 치솟는 집값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일방통행식 육아지원정책에 어느 젊은 부부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자녀를 낳겠다고 하겠는가. 중고 여학생 10명 중 3명이 “자녀 출산은 필수가 아니다.”라고 버젓이 말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매달 정해진 날에 월급처럼 받던 용돈을 손자가 입학하는 달부터 받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아쉬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만으로도 고맙고 큰 병만 얻지 않으면 밥은 먹을 수 있는 처지를 다행으로 생각하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나저나 손자와의 거리가 배 이상으로 멀어졌고, 열공하다 보면 만날 기회가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하여 “할아버지가 손자 보고 싶어서 눈물깨나 흘리겠네!” 했더니 살포시 다가와서 눈을 맞추고는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영상 통화하면 되잖아요!” 한다.

폴더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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